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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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

2020-06-12 (금) 이현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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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아버지는 경찰 간부 후보생 1기 출신으로, 경찰청이 경무국이나 치안국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근무하셨다. 그는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나 만주의 독립군 부대에서 십대 시절을 보내고, 광복 이후 남한으로 귀국하여 경찰이 되었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간첩을 잡는 특수 조직에 소속된 적도 있지만, 독립군 부대에서 집중적으로 교육받은 유창한 중국어 구사능력을 인정받아 외국인 범죄 수사과 소속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때에는 대한민국 육군으로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난 우리 가족들은 “우리 집에 장동건이 있네”라며 웃었는데, 사실이다. 군인이자 경찰로서 그가 받은 훈장과 표창들은 일일이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이다. 명예 NYPD로 선발되어 뉴욕에 다녀온 적도 있다. 하지만 뉴욕에 다녀온 소감은 단 한마디, “잘 다녀왔다”였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변명하자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다. 현역 시절의 할아버지는 늘 집 밖에 계셨고, 은퇴 후에는 과묵한 독서로 여생을 보내셨다.


그가 바깥에서 있던 일을 가족들에게 자세히 털어놓는 일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 폭력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정권과 민주화에 이르는 날까지 국가의 이름으로 대규모로 강제적 물리력이 동원되던 시대였다. 그 세월을 군인이자 경찰로 살아온 남자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외로운 사람이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 그 분노가 정당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시위의 과잉진압 장면들로 더 많은 분노가 촉발되고 있다. 그 역시 정당한 분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국가가 요구할 때, 폭력의 도구로 살아야했던 한 사람을 알고 있다. 한 개인으로서, 그는 그 모든 폭력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대부분의 경찰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시위대의 안녕과 경찰의 안녕을 동시에 기원한다. 평화가 찾아오기를, 가족들과 웃으며 저녁식사를 할 수 있기를. 그들의 마음속에 어둠과 고독이 깃들지 않기를.

<이현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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