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비즈니스 봉쇄령(Lockdown)이 내려진 지 벌써 석달이다. 세탁업은 필수업종에 속해 문은 열어 놓고 있으나 손님 얼굴은 하루 두 세명 보기도 힘들다. 무료함을 달래려 우연히 네플릭스(Netflix) 에서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이라는 한국 TV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여로’, ‘수사반장’ 등 1970년대 TV드라마에서 멈춰 서 있던 나의 한국 드라마관은 이 한편의 연속극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어쩌면 배우들이 그렇게 야무지고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하는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극의 줄거리도 재미있거니와 촬영 장소 선정에서 소품 하나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한국 드라마는 한편 한편이 예술이었다.
얼마 전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의 상을 휩쓴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가의 상속녀이자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독신녀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다가 강풍에 날려가 비무장지대 북쪽에 불시착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나뭇가지에 걸린 낙하산 줄에 대롱 대롱 매달려있던 윤세리는 때마침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북한군 특수부대 소속 리정혁 중대장(현빈)의 눈에 띄게 되고 그의 품 안으로 안기듯 떨어져 내리게 된다.
그때부터 카메라는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남과 북을 오가며 남북한 간의 이질화된 언어생활, 꽃제비가 먹을 것을 훔치는 북한의 장마당 풍경, 석유곤로와 가마솥이 걸려있는 북한 가정의 부엌 모습, 북한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개성에서 평양까지 2시간 거리를 기차 타고 가다가 정전으로 차가 서면 마을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창문을 통해 승객들에게 삶은계란과 옥수수, 땔감 등을 팔기 위해서이다. 기차가 한번 서면 불이 들어올 때까지 보통 열댓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승객들은 추운 차 안에 있느니 차라리 밖에 나와 모닥불을 쬐며 밤을 보내는 것이다. 어둠이 덮인 기찻길 옆 풀밭에 여기 저기 모닥불이 지펴지고 승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에 옥수수와 감자를 구워 먹는 장면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전혀 다른 정치 체제와 사회환경 속에서 살다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북남남녀(北男南女)라는 색다른 테마도 재미있지만 그들을 둘러싼 여러 조연 배우들의 개성 있고 감칠맛 나는 연기도 극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거칠지만 순박 하고 의리 있는 북한 병사들, 인정과 우정이 넘치는 마을 아낙들, 남한 사람들 못지않은 북한 주부들의 교육열, 수령님 찬양가를 부르며 열을 지어 등교하는 북한 어린이들, 그리고 억압된 체제 안에서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장마당 상인들의 끈질긴 생명력… 그럴싸하게 묘사한 북한 권력층 내부의 암투와 갈등도 흥미롭고 인권을 존중하는 남한의 국정원과 잡혀 들어가면 우선 고문과 매타작 부터 당해야 하는 북한 보위부의 취조 방식도 사뭇 대조적이다. 이 드라마는 사랑, 의리, 인정, 가족애, 권선징악 등 누구나 어릴 적부터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동화 속 환상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 수록 어찌나 눈물샘을 자극하는지 티슈를 박스 째 갖다 놓고 눈물을 닦아야 했다.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되어 ‘빈지와칭(Binge Watching-폭풍시청)’을 하면서 네플릭스의 프로그램 안내 화면이 왜 온통 한국 TV 드라마들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넓게, 더 깊숙히 세계인들의 안방을 점령하고 있다. 드라마든 음악이든 스포츠든 한류는 알게 모르게 Covid-19 팬데믹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세계인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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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