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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타파

2020-06-11 (목) 김효선 칼스테이트LA 특수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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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골프에 정신이 팔려서 라운딩이 끝나면 그날 잘 안되던 부분은 바로 연습장으로 가서 연습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책을 읽으며 골프의 움직임을 연구했었다. 처음 골프에 입문을 하게 해 주신 집사님이 덤프 트럭에 실을 정도의 공을 치며 연습을 해야 한다니까 고지식하게 몇트럭을 쳐야 한다고 계획을 세우고 연습에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맘대로 안되는 골프는 왜치는 걸까?

그래도 일년이 좀 지날 때 쯤 되자 그냥 골프장에 혼자 나가서 어느 팀과 라운딩을 하더라도 피해를 주지 않고 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보통 골프는 다른 레저 활동과는 달리 하나의 조건이 더 있다. 일반적으로 포썸으로 나가기 때문에 시간과 돈에 친구까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난 늘 혼자 나가곤 한다. 가끔 4명이 나오지 못한 팀과 합류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사람들과 골프를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골프 카트로 옮겨 타기 전에 나는 다른 골퍼들과는 다르게 한쪽 다리에 긴 브레이스를 하고 도우미 견과 휠체어를 타고 골프장에 도착해 팀을 만나게 된다. 몇 홀 동안은 대부분 걱정을 한다. 장애인과 골프를 치면 자신들의 페이스를 못 따라가거나 뒤쳐지면 공도 찾아주어야 하고 기다려야할 거라는 선입견으로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여기서 한가지! LA 주변의 골프장에는 한인 골퍼들의 비중이 워낙 많아 대부분 한국 사람들과 치게 된다.


얼마동안 인사도 안하고 그냥 치다보면 내가 기다리게 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고 머쓱해진 분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보통 편안한 멘트로 안면을 트게 되니까 나에게 첫 말은 “미국은 참 좋아요”라는 말로 다가온다. 난 그 말의 뜻을 알지만 “왜요?”하고 되묻곤 한다. 결국은 평일에 개를 끌고 나온 장애인이면 미국이란 나라에서 주는 복지금으로 살 것이고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싼 골프장이 있어 거의 누구가 치니 얼마나 좋은 나라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뭐라고 꼭 짚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지급하는 복지금과 미국에서 주는 복지금의 크기로만 보면 당연히 미국이 많아 보이지만 한국에서 갓 오신 장애인의 말씀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정도가 되는데 미국에서 주는 복지금은 밥 먹고 살기도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 자신의 이야기를 피하고 사실에 의거한 두 나라의 장애인 복지를 비교해가며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내겐 교수란 직업도 있고 돈도 벌만큼 번다고 반박하기도 뭐하다.

장애인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웃으며 실력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골프를 90의 벽을 넘어 80중반까지 치는 실력으로 적어도 장애인들은 집안에만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또 다른 편견이라도 넘어서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말이 기다리고 있다. 저 이가 골프를 잘 치는 이유는 왼쪽다리에 브레이스를 하기 때문에 왼쪽이 무너지지 않아서 잘 치는 것이라는 남과 또 다른 이유가 붙는 것이다. 하하하! 요즘 유행하는 새 브레이스로 패션 감각있게 골라 신고 나가야겠다.

그런데 미국병원에 가도 왜 장애인의 의료보장기구는 다 흰색이어야 할까? 옷 색깔에 맞추어 입게 색상이나 디자인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주류사회의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그 ‘옵션’을 많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결국 좀 차이가 있어도 인간이 가진 기본 선입견은 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장애인 여러분~ 선입견에 주눅 들거나 그들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더 많이 눈에 띄게 나가고, 실력으로 말합시다!

<김효선 칼스테이트LA 특수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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