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사개월 봄은 오가련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느끼지 못한 채 반가운 유월을 맞이한 기쁨 벅찬 한편, 하루살이 인생무상 ‘삶’에 회의를 느낀다. 본인은 시인도 문인도 아닌 문학과는 아주 거리가 멀게 살아온 류생(流生)에 불과 하다. 그러나, 우리 기성세대는 청소년 시절 한때 그야말로 온갖 낭만에 사로잡힌 문학도처럼, 또 좀 심한 경우에는 이 세상 어디도 존재치 아니한 인생철학에 몰두 했었다.
목욕도 아니 한 채, 장발에, 다 떨어진 누더기옷에, 자신의 발보다 두 배나 큰 뒤축 없는 헌 군화에, 알지도 못하는 ‘Time’잡지를 뒷호주머니에 보란듯 끼고 마치 꽁초 연기에 취한 척 가관스럽게도 소크라테스 2세인냥 비 오는 명동거리를 누빈 세월이 바로 어제다.
어젯밤 뒤척거리던 잠에서 깨어 회오리바람에 휩싸인 창문 밖을 내다보는 순간 흐른 눈물.. 왜 그칠 줄 몰랐을까? 70~80이란 언덕에 오르면 그게 바로 자연의 일치 일까, 아니면 인생 회고의 한줄기 화살일까? 어제 우리가 자식이었을 때는 부모는 백년 생존 하시리라 믿고 이런저런 생각 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 허둥대다가 어느 날 노을을 안고 보니 희미한 기억 속 아롱거리는 부모님 생각에 사로잡힌 한 폭 설움이 아니었나 싶다.
동서를 막론하고 삶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특히 정든 고향의 뿌리를 뽑아 가져온 이민 생활은 너무나도 황당하다. 이럴 때일수록 “엄마”와 “아빠”에게 단 한 통, 한 달에 한번이라도 전화를 하면 한다. 특히 그간 코로나로 찾아뵙지도 안부도 전하지 못한 부모님께 효도의 발길을 옮겨 보면 한다. 좋으면 나의 혈육이요 나쁘고 싫은 존재라면 원수인냥 잊고 살지 않았으면 한다. 아마도 많은 부모들은 걸려오지 않는 전화통에 매달려 ‘혹시나’ 하고 들어보면서 일그러진 쓴 웃음을, 행여 남들이 볼까 빈 방에서 감춘 채 돌아서곤 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 같이 기다리는 우편배달부의 모습을 창문 사이로 몰래 내다보는 그 쓰라린 심정 그것이 다 부모 된 죄일 것이다.
아무리 정 없는 부모지간이라도 부모는 부모다. 나를 존재케 한 생명의 은인이다. 또한 나를 이 세상에서 우뚝 서게 한 골격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자식은 부모를 잊고 살아도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을 감싸돌며 그 마음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다.
창문 밖 빗소리에 잠긴 순간 울린 전화... “아빠, 뭐하세요.. 비가 많이 온다는데.. 외출 마시고 감기 조심 하세요”.. “아침은 드셨어요?” 하는 아들 목소리는 나의 활기요 , 자부심이요 또한 자랑이다. 그래 이제 나에게 다가선 노을은 신나게,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황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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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종/뉴욕지역한인회 연합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