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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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교훈

2020-06-0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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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많은 한인들은 90년대 초중반이라고 답할 것이다. 1990년 여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불황은 1991년 초 걸프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공식적으로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컸다. 한 때 지지율이 90%에 달했던 아버지 부시가 1992년 재선에 실패한 것도 그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불황이야 주기적으로 오고 가는 것이지만 1992년 4월29일에 터진 폭동은 한인 커뮤니티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흑백 간의 인종 갈등으로 촉발된 이 폭동으로 이와는 관련이 없는 한인 점포 2,300여채가 불타거나 약탈되는 등 파손됐다. 이 폭동으로 인한 10억 달러 규모 재산 피해의 절반이 한인이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1994년에는 한인들도 많이 사는 노스리지에 강진이 발생했다. 리히터 진도 6.7의 이 지진으로 50여명이 죽고 8,0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500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거기다 산불과 폭우, 산사태가 이어지고 범죄율마저 치솟자 많은 한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에 온 것이 잘 한 일인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됐다. 80년대의 호황은 아득한 옛일 같고 다시는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하이텍 붐은 미국 경기를 바꾸어 놓았다. 듣도 보도 못한 주식이 나날이 오르고 기술주에 투자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투자가들의 지나친 기대와 과욕으로 하이텍 버블이 부풀고 이것이 터지면서 결국 다시 불황을 맞기는 했지만 지금 신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마존과 구글, 넷플릭스 등이 모두 이때 탄생했다.

미주 한인사회는 요즘 9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두 달이 넘는 장기간의 봉쇄가 끝나는가 했더니 또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으로 전국이 끓어오르며 한인을 비롯한 여러 상가가 방화와 약탈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엎친데 덮쳤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90년대 중반의 악몽과 비교할 수는 없다. 우선 폭동 피해 규모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다. 그 당시 한인 업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번에는 일찍이 주방위군이 LA 코리아타운 등에 파견돼 범죄 피해를 사전에 막았다.

실업률이 10%가 넘는 등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이는 업소 폐쇄와 자택 격리 명령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것이 풀리면 빠른 속도로 원상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주 발표된 실업률 통계는 20%가 넘을 것이란 예상치와는 달리 전 달 14.7%에서 13.3%로 오히려 낮아졌다.

코로나로 인한 인명 피해는 미국에서만 10만명이 넘었지만 이 수치는 초기 예상보다는 낮은 것이다. 3월 중순 확진자가 급증하자 영국 런던의 임피리얼 칼리지 연구팀은 미국내 사망자가 220만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10만 명의 죽음도 큰 손실이기는 하지만 191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플루 때는 당시 전체 인구의 1/3인 5억 명이 감염되고 이 중 10%인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UC 버클리의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망자 수가 적어진 것은 강력한 봉쇄조치가 효과를 봤기 때문이라며 이를 방치했었더라면 480만명의 확진자와 6,000만명에 달하는 감염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길게 보면 어느 때를 막론하고 인류는 그 시대가 가져온 재난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우리 전전 세대는 미국에서는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을, 한국에서는 일제 35년과 6.25를 겪고도 그 전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냈다.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의 반복은 아무도 바꿀 수 없는 세계의 기본적 구도다. 나쁜 시절을 견뎌낸 사람만이 좋은 시절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또 좋은 시절이 왔을 때 나쁜 시절을 대비하는 사람만이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 최근 나오고 있는 경제 지표와 사망자 통계는 최악의 고비는 넘겼으며 터널의 끝이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돌아올 밝은 날을 기다리며 남은 어두움을 견뎌내야겠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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