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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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사랑

2020-06-08 (월) 나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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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고 난 것 같다. 간밤의 꿈이 살푸시 기억회로 속을 떠도는 것처럼 아련하다. 꿈의 구석구석 피어나던 사람들 얼굴, 목소리, 대화, 맛있는 음식 냄새, 허기와 포만감, 컴퓨터와 핸드폰 검색, 어르신들과 직원들과의 업무와 사교 등등 하루의 일과가 생각난다. 문을 열면 콧등에 날아와 앉던 그 익숙하던 냄새와 체취도 아스라하다. 때로는 긴박하게 돌아가던 코드 블루와 STAT 상황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드나들던 앰뷸런스와 스태프들, 위급했던 순간마다 나의 심장 박동도 빨라져 종종걸음을 쳤었던 기억.

어르신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면서 보낸 시간들은 손마디에 굳은살이 박이듯이 단단해졌다. 간호팀은 아니지만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 질병, 식사량 체크, 병원 일정 등을 같이 챙겨야 하는 요양원의 한국직원의 업무 특성은 공적인 직원의 업무와 함께 개인적으로는 부모님 대하듯이 모시게 된다. 한 공간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고 서로 모르는 것 없이 궂은 일, 좋은 일을 알고 챙겨주고 부대끼는 가족이 된다.

그 직장을 그만둔 지 일 년 남짓, 요즈음 코비드 19으로 인해 요양원 입주자들의 감염이 확산되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남의 일 같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무서운 전염병은 무차별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떠돌고 인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장기를 손상시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요양원은 전염병을 피해갈 수 없는 곳이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저마다 기저질환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이 분들을 돌보는 간호팀과 한인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조여매고 출퇴근을 감행하는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자기도 모르게 남을 감염시킬까봐 들락날락할 때마다 수시로 손을 씻고 일하고 퇴근해서는 입던 옷은 모조리 세탁할 것이고 행여 가족들에게 누가 될까봐 스스로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겠지.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한 마디의 말과 따뜻한 눈빛을 잃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 역시 거기서 동료들과 더불어 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게는 다 자기 몫의 시간과 때가 있는지 오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은 아직도 일하고 있는데 나는 이제 마치 꿈을 꾸고 난 것처럼 그곳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다만 모두 다 안전하기를 소망할 뿐.

아침에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여덟 시간 동안 적어도 하루 오십 번 이상은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며 웃을 일이 많았던 곳,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한테 다 못하는 효도를 이분들에게 한다는 마음으로 입주자들께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던 곳, 봄과 여름 내내 뒷마당에 형형색색의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곳, 6월이오면 여름 시작부터 가을 초입까지 요양원 입구에 배롱나무가 붉게 피어나는 그 곳이 그립다.

배롱나무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 나무 꽃그늘 아래에서 이쪽 저쪽 한 무더기씩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을 하냥 올려다보며 직장일 힘들어 한숨 짓고 한탄해 마지 않던 키 작은 중년여자가 붉은 꽃이 피어도 이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롱나무야, 네가 피워 올리는 붉고 아름다운 꽃그늘 아래로 지나가는 꿈을 꾼 듯하구나!

나는 소망한다. 사랑하는 어르신들과 직원분들이 계시는 그곳에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들기를… 모두 안전하기를! 그래서 하루에도 수 차례 웃음꽃이 자지러지게 피어나기를!

<나혜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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