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지난 5월 25일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46)의 죽음에 항의하며 1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가 일부 범죄자들의 무차별 약탈과 방화, 기물파손 등으로 변질되며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도 어쩌면 그동안 발생했던 수많은 미국 경관에 의한 과잉진압 피해 ‘통계’로 묻혔을 수도 있었지만 미니애폴리스 경관이 “숨을 쉴 수 없다”고 고통을 호소한 플로이드의 목을 거의 9분간 무릎으로 찍어 누른 비디오가 다음날 5월26일 공개되며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다. 플로이드는 20달러 위조지폐를 유통하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됐었다.
이번 사태는 28년 전인 1992년 4월과 5월에 걸쳐 발생했던, 우리 미주 한인사회 이민사 최대 비극이었던 ‘4.29 폭동’과 여러모로 흡사하다. 당시 경찰의 검문지시를 무시하고 차량 도주 극을 벌인 로드니 킹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LA 경찰국 소속 경관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는 비디오가 공개된 상황에서 1992년 4월29일 배심원이 경관 4명에게 무죄평결을 내리면서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었다.
4.29 폭동이나 이번 소요사태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과 폭력이 동영상으로 공개되면서 촉발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번 소요 사태에서 LA를 비롯한 남가주 곳곳에서 시위가 변질되며 샌타모니카, 밸리, 할리웃 베벌리힐스, 다운타운 지역 등에서 시위와 함께 약탈과 방화, 기물파괴 등이 발생했지만 다행히도 LA 한인타운은 큰 피해를 비켜갔다. 물론 외곽 지역 한인 업소들은 일부 피해를 당했다.
이는 4.29 폭동 당시 LA 한인타운을 폭도들에게 내주고 사실상 방치했던 LA 경찰국이 당시의 실수를 거울삼아 선제적 대응에 나섰고 무엇보다 1일부터 한인타운에 주 방위군이 배치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인들도 자체 순찰대를 조직해 한인타운 지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인타운서 주 방위군을 보니 무척 반갑고 든든했다. 군용차량과 장갑차를 앞세워 보무당당하게 출동한 주 방위군의 포스는 경찰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주 방위군이 있고 없는 것은 치안 확보 차원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통상 주 방위군은 주지사가 시장이나 카운티 수퍼바이저 등 지방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만 투입된다. 이와 관련, LA 시 관계자는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조기 배치된 것은 에릭 가세티 시장과 LA 시의회와 함께 LA 한인사회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4.29 폭동의 참혹한 트라우마를 가진 한인들의 걱정과 불안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주 방위군의 한인타운 배치는 LA 한인사회의 28년 전과 오늘의 존재감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어로는 ‘코리아타운’(Koreatown)이지만 사실 한인타운은 더 이상 한인들만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한인타운은 LA 다운타운과 함께 지난 20여 년간 남가주에서 가장 많은 재개발이 이뤄진 지역이다. 한인타운 윌셔가는 고층 오피스 건물이 즐비하고 럭서리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들이 한인타운 곳곳에 완공됐거나 현재도 공사 중에 있다. 한인타운에서 웬만한 규모의 아파트는 주류 부동산 투자사나 펀드 투자사가 지난 20년간 집중적으로 매입해서 소유하고 있다.
이들 주류 투자자들은 LA 한인타운이 지하철이 관통해 교통이 편리하고 다민족이 살고 있으며 매력적이고 다이내믹한 한인 상권이 있어 다세대 주거지 투자처로는 LA에서 최고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의 한인타운은 28년 전의 변두리가 더 이상 아닌 LA 시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많이 발전했고 LA 시정부, 주류사회에도 중요한 지역이다. LA 시를 장악하고 있는 정치권과 경제 엘리트들에게 한인타운은 중요한 ‘밥줄’인 것이다. 그들 역시 한인타운이 28년 전처럼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투입된 배경이자 한인타운이 아직까지 이번 소요사태로 큰 피해를 당하지 않고 있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인타운이 4.29 폭동 이후 다민족이 공존하고 투자하고 함께 사는 다인종 상호공존 지역의 모델로 변모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필라델피아와 뉴욕 등에서는 많은 한인 업소들이 피해를 당했다. 모쪼록 이번 소요사태가 더 이상의 한인 피해 없이 진정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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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부국장·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