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피로감을 떨어버리기 위해 동네 뒤 언덕을 걷기 시작했다.
늘 환자들에게 걷는 것을 강조하지만 막상 걸을 시간을 만드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좋다는 점들을 생각해본다.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치료에 좋으니 뇌경색과 심근경색 예방은 물론이고 골다공증, 불면증, 우울증 치료에 좋다. 대뇌는 다리 근육의 자극을 받아 걷기운동을 하면 치매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란 물질이 줄어들어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또 위장 운동이 촉진되니 신진대사에 좋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조용히 걸으니 머리가 맑아지며 그동안 살아온 일들이 떠오른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밑동이 큰 소나무가 위로 쭉 뻗어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깊은 뿌리를 내리고 올라갔을까?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뻗은 가지들을 지탱하는 동안 밑동이 그렇게도 단단하고 굵어졌겠지. 성장했으면서도 성숙해 보이는 소나무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난 주부터 선별적으로 환자분들과 직접 대면 진료를 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해서 직접 진료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신다. 몇몇 분들이 귀한 의료용 마스크를 구해다 주셔서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다. 또 예쁜 천으로 손수 마스크를 만들어주신 분들, 집 음식을 만들어주시거나 뒷마당에서 직접 키운 상추를 주시면서 용기를 북돋아주신 분들도 계신다.
몇몇 환자분들은 정부에서 받은 재난 지원금을 좋은데 써달라고 나에게 선뜩 맡기셨다.
마침 아프리카 미래재단을 통해서 남아공에 코비드19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많은 빈민들을 도와달라는 소식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아프리카에도 코비드19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남아공에는 주민뿐 아니라 주위의 더 가난한 나라에서 피난민들이 몰려와서 상황이 열악하다는 소식이었다. 빈부의 격차가 심한 곳일수록 가난한 자들은 방치되고 있었다. 정성어린 성금을 여러분들과 함께 모아 남아공에 보낼 수 있었다.
다시 길을 걸으니 조정민 목사님의 잠언록 가르침이 생각난다. “남에게 퍼주다가 망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 혼자 쌓다가 망한 사람은 많습니다.” “나눔이 손해 보는 적이 없고 베풂이 가로 막는 적이 없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던가?
감사와 더 나누지 못한 후회의 마음이 교차되며 조금 더 걷다보니 제법 높아진 언덕 밑으로 주택들이 멀리 보인다. 다리가 뻐근해지며 숨이 차오른다. 숨이 차보니 평소에 어려움 없이 숨을 잘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가 생각하게 된다. 몸에서 산소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숨을 고르며 밑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호흡은 단지 산소를 섭취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은 음식을 섭취하여 대사하는 과정에서 산성의 물질을 생성한다. 증발될 수 있는 산은 탄산가스로 폐에서 호흡으로 배출되고, 증발하지 않는 종류의 산은 콩팥에서 배출된다. 콩팥에서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산 하나가 버려질 때만 알칼리 하나가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하나를 버릴 때 하나를 얻는다는 원리에 의해서 우리 몸은 평형이 유지된다. 버리지 못할 때 평형은 깨어지며 몸이 산성이 되면 조직에 산소 공급이 잘 안되어 졸리고 정신이 몽롱해지며, 심장기능이 저하된다. 또 만성적으로 계속되면 뼈가 약해지며 신장 결석이 생긴다. “성숙은 버리는 것”이란 잠언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래 동안 연락을 못 드린 뉴욕의 은사 교수님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선생님 밑에서 수련을 받고 남가주로 이사 온 후 오랫동안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세월이 흘러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백방으로 주소를 알아보다가 인터넷 주소록에서 간신히 선생님의 주소로 추정되는 연락처를 찾아 편지를 썼다.
“선생님, 혹 선생님께서 이 편지를 받으실 수 있을지 조심스럽게 펜을 듭니다. 저의 배은망덕을 용서해주십시오. 선생님의 가르침과 따뜻함은 절대로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젊을 때는 선생님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제가 윗사람이 되어 갈수록 남에게 베푸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점점 더 느껴갑니다. 선생님의 자상하신 격려와 사랑이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선생님께서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화번호가 여기 있으니 혹시 이 편지를 받으시면 꼭 연락주십시오.”
며칠 후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편지에 대해 고마워하셨다. 너무나 반갑게 그간의 소식과 이야기, 사모님께도 안부를 드렸다. 기뻐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을 상상하며 쑥스러웠지만 연락을 참 잘 드렸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리 많은 감사도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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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