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코로나 불면증

2020-05-28 (목)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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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오래된 카페 ‘인솜니아’(불면증)는 요즘 초저녁에 문을 닫는다. 밤도깨비들이 노트북 들고 가서 잠 못 이루는 밤 시간을 보내다 오던 곳. 길쭉 네모 모양, 낙서 새겨진 둥그런 모양, 제각각 테이블에 의자 종류도 맘대로, 편하고 정겹던 공간이 행정명령에 따라 투고 샌드위치나 만들 뿐, 무색해진 카페 이름이 아쉽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6피트 간격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두어달 만에 문을 연 하이킹 트레일에 올랐다. 어느새 봄은 지나가고 유채꽃이며 억센 들풀이 내 키 높이로 자라나 길이 안 보인다. 두 세군데 길목에서 만난 마운튼 라이언은 “여기 웬 일이세요?”하며 갸우뚱 우릴 쳐다본다. “그래도 하루 만보 걷기 목표 달성이니 오늘은 일찍 잠이 오려나?” 친구가 묻는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미 정신의학협회는 불안증, 과잉 각성된 신체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의 사례와 더불어 불면증 케이스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매일 이어지는 확진자 속보에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하다, 밤새 코로나 관련 근로자 고용실태와 실직 위기 뉴스를 시청하느라 뜬 눈으로 지샌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생활 소음에 시달려 신경이 날카로워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내용들이다.


불면증은 잠을 잘 여건에도 잠 안오기, 자더라도 자주 깨기, 너무 일찍 깨기, 잤는데 잔 것 같지 않기 등의 수면이상을 말한다. 정신질환 분류에서는 이를 다시 세분하여 과수면증, 낮 시간인데 갑자기 기절하듯 잠에 빠지는 기면증, 푸아푸아 코를 골며 자다 말고 갑자기 정점에 이르러 너무 조용해져서 죽었나? 하고 들여다보는 순간, 일시에 숨이 뚫리며 크르르르 호흡을 몰아 뱉는 무호흡 수면장애, 주/야간 교대근무자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주기 리듬 수면각성장애, 몽유증이나 악몽, 잠꼬대 등 수면수반증, 술이나 마약 등 약물에 의한 수면장애 등으로 설명한다.

불면의 밤은 길다. 천정에 얼룩진 빗물 흔적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천 마리씩 양을 세고, 별 하나 나 하나.....별짓을 다해도 머릿속은 점점 맑아오고 자야지 자야지, 생각만 초조하다. 베개를 뽑아 두 다리 사이에 끼워도 보고 두 팔로 안아도 보고, 201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는 전전반측이 바로 이거다. 자고 싶다!

미해군 파일럿들의 120초 수면유도법은 적진의 포성과 섬광 등 시뮬레이션 실험에서 놀라운 효과가 입증된 뒤로, 서방국 군대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얼굴 표정 풀기, 온몸 근육 이완시키기 그리고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상상하기 등으로 이어져, 작전 중 잠이 부족한 병사들의 꿀잠 선물에 성공적인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인 제작자 가운데도 유튜브 1천만 뷰 이상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누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 청각 중심의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 경험인데 듣다보면 스르르 잠이 온다는게 수백만 리뷰어들의 피드백이다. 머리 간지럼, 두뇌 오르가슴 등의 별칭으로 불릴 만큼 처음 들으면 온몸이 근질거리지만 미국수면과학회, 임상심리학회, 옥스퍼드대 등에서 과학적 효능 연구를 시작한 바 있다. 사각사각 연필소리, 립스틱 바른 뒤 입술을 뽁뽁대는 소리, ASMR의 형용할 수 없는 사운드는 마치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아름드리 나뭇잎에 바람 지나는 소리 등 집중에 도움을 주는 백색소음과 비슷하다.

최근에는 전문의 처방으로만 이루어지는 9주 코스 디지털 수면 인지치료 ‘솜리스트’(Somryst)가 FDA 승인을 받아 잠 못 들어 괴로운 이들의 머리맡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가 개발한 디지털 앱 ‘슬리피오’(Sleepio) 역시 수면제 의존도를 낮추는데 이바지한다. 이들이 부디 불안한 코로나 시대의 자장가가 되면 좋겠다.

<케이 김 정신건강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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