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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본 ‘정의연’ 의혹

2020-05-21 (목)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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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인권운동 후원금으로 단체를 만들거나 재난으로 돈을 모금하여 운영을 하면 언제나 뒷이야기가 많기 마련이다. 그 진위가 어떠하든 찝찝하기는 매한가지다. 더구나 ‘정의’라는 이름을 앞세워 겉과 속이 다른 불투명한 운영을 하는 단체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정의기억연대라는 단체는 위안부 할머니의 인권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공익법인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최근 수십억원의 기부금 유용과 횡령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즉, 타인을 위한 인권운동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한 인권운동인지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그 의혹을 제기한 이용수 할머니가 화제의 주인공이 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이용수 할머니를 만난 기억이 떠올랐다. 2006년 2월에 정신대에 큰 지주 역할을 했던 고 레인 에반스 의원과 함께 한국을 공식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위안부 피해자들이 계시는 경기도 광주 퇴촌마을 ‘나눔의 집’을 방문하여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수요일이었는데,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데모를 포기하고 에반스 의원과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분들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에반스 의원이 한국까지 와서 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의 집을 방문해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던 것이다.


인권운동은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으려면 첫째로는 인권운동과의 연관성이 있어야하고, 둘째로는 헌신성이 있어야한다.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위안부 문제와 특별한 연관이 없었다. 가족이나 지인, 친척 중에 위안부 피해자가 없었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1999년 어느 날 워싱턴 근교에서 있었던 정신대 모임에서 연방 하원의원인 에반스 의원을 만나 정신대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접하게 되면서 그 문제가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고, 이내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다.

에반스 의원이 은퇴한 후인 2007년 2월, 미 의회 사상 최초로 하원위원회에서 위안부 주제의 청문회가 개최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나는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이용수 할머니를 워싱턴에서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지 1년만이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 차례가 끝난 후 애니 팔로마베가 아태소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피해를 당했는가 설명해달라”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을 다 이야기하지 못하셨다. 차마 그 비참함을 다 설명할 수 없으셨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누군가가 그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음 증인인 김군자 할머니에게 기어가듯 다가가서 “할머니, 그때 당시 당한 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한 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김군자 할머니를 포함한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고, 결국 미 연방하원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만장일치로 가결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고 에반스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최초로 미 의회에 상정했고, 이후 지병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결의안을 총 5번 상정하는 등 위안부들의 인권을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했음에도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인권의원으로 유명한 에반스 의원이 한국의 위안부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헌신을 다했던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에반스 의원의 진정한 헌신에 감사드린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일본군에게 당한 적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인권의 탈을 쓴 단체에 또 다시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부실한 인권운동은 정치적 이슈보다는 사실 확인과 증거를 통한 법적 이슈로 다루어져야 한다. 인권운동 단체나 참여자들의 진정성을 재조명함으로써 인권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라나지 않기를 바란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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