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안 차별 적극 신고해야 대책마련 가능”

2020-05-20 (수) 12:00:00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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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인터뷰 - 제리 강 UCLA 부총장

▶ 코로나 사태 후 언어폭력에 폭행까지 심각, 경찰력으로 해결 안돼…먼저 심각성 알려야
한인들, 공동체간 이해·소통에 앞장 서야

“아시안 차별 적극 신고해야 대책마련 가능”

제리 강 UCLA 부총장은 코로나19 관련 아시안 대상 인종차별 및 증오범죄에 커뮤니티가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미 전역에서는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및 증오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아태정책위원회(A3PC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미국에서만 약 1,700건의 아시안 증오 관련 사건이 보고됐는데(본보 19일자 A4면 보도) 현실은 이보다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처하기 위해 본보는 미국 법학계의 석학이자 인종차별 문제 전문가인 한인 제리 강 UCLA 부총장과의 특별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아시안 인종차별의 배경, 원인, 해결책 등을 집중적으로 들어봤다. 지난 2015년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UCLA 부총장직에 올라 대학 내 차별 방지와 소수계 권익보호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제리 강 부총장은 인종차별 문제를 연구해 온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음은 강 부총장과의 일문일답.

-미국 내 아시안 대상 차별의 배경은

▲미국에서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의 역사는 지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인들은 지난 1850년대 서부개척 당시 캘리포니아 금광개발 기간 동안 북미에 처음으로 유입됐다. 약 1만4,000여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미 대륙 횡단철도 건설에 투입돼 1869년 횡단철도의 개통을 실현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1880년대 30만 명까지 중국인 이민자들이 늘어나 캘리포니아 인구의 10분의 1에 육박하자 연방의회는 ‘중국인 배척법’을 승인해 1943년까지 61년간 중국인의 노동 이민을 금지시켰다.


또 2차대전 기간 일본계 미국인을 부당하게 배제하고 감금한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던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은 10곳의 수용소에 강제 억류됐다. 이와 같이 중국인 이민자를 배척하고,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수용한 미국의 역사는 아시아계 이민자 공동체를 향한 혐오 정서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왜 아시안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고 보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us)’와 ‘그들(them)’ 사이에 선을 긋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위기의 책임을 묻고 싶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분류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진주만 공습, 911 테러,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에서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유색 인종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범죄는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이때 사람들은 아시안을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분류하며, 오랜 기간 만연하게 퍼져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고정관념의 잣대를 들이댄다.

위기로 인해 발생한 좌절감과 원망은 아시안을 향한 차별과 증오범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 또는 ‘중국 바이러스’라고 명명해 인종차별 논란이 대대적으로 불거졌다.

-아시안 대상 혐오 정서의 심각성은

▲정확한 수치를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아태정책위원회(A3PC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최근 6주간 미국에서만 약 1,700건의 아시안 증오 관련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더 많은 차별 사례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측되며,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우한 바이러스’ 또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용어는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혐오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법당국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나


▲경찰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미국 내에서 ‘소수자’라는 고정관념을 감안하면 아시안을 향한 증오범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는 대부분 폭력적인 언어와 관련됐다. 이 문제는 경찰 당국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모든 미국인들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나와 다른 ‘그들’로 보지 않고 ‘우리’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인종차별을 당하고 심지어 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정부 기관 뿐만 아니라 지역 비영리단체에 피해 사실을 주저하지 말고 보고해야 한다. 아시아계 주민들은 그들이 선출한 지역의 정치인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보고해 심각성을 알리고, 정치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그레이스 맹 연방하원의원은 결의안(H.Res.908)을 상정해 ‘아시안에 대한 어떠한 차별 및 증오 행위는 용납될 수 없고, 모든 법 집행 기관이 관련 사건을 엄중하게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와 같이 정부 차원의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아시안 대상 증오범죄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현재 코로나19로 발생한 인종차별과 증오범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코로나19가 몇몇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전세계에 퍼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이상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을 한 국가, 민족, 인종과 연관시키는 일은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오래도록 내재돼 있던 인종차별적인 관념이 한 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

-인종차별 및 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시절에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무렵 이민자들과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어떤 일을 하는 게 세상에 더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나 역시 6세 때 이민을 와 소수 인종으로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인종차별, 평등, 다양성 등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았고, 해당 주제들에 대한 법률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 로스쿨에 진학하게 됐다.

-UCLA의 ‘공정·다양성·포용위원회’ 담당 부총장으로서 역할은

▲대학 내 차별 방지와 다양성 보장 및 소수계 권익 보호를 위한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대학에서 인종과 성별 등에 상관없이 기회의 균등이 실현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직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종 차별 의혹 뿐만 아니라 성희롱 수사 등을 다루고 있다. 또한 교수들의 선발과정에 있어서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즉 소수계 교수진 고용 문제와 상대적으로 낮은 흑인 학생 수, 증오범죄 등의 논란에 직면한 대학내 공정성 제고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통계상의 증거와 전문 지식을 통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대학 내 차별 방지 관련 업무와 활동을 감독하고 있다.

-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특히 우리 한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뿐 아니라 인종차별과도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민자로서 다른 인종과 우리를 구분을 짓지 말고, 공통 분모를 찾아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부터라도 이웃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모두가 함께 이 시기를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제리 강 UCLA 부총장은

한국 태생으로 6세 때 미국으로 이민 와 하버드대 물리학과와 하버드 로스쿨을 우등 졸업했다. 연방 제9항소법원 서기와 연방 상무부 통신정보관리청(NTIA) 사이버공간 정책과를 거쳐 1995년 UCLA 법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25여년 간 인종차별과 정보통신 분야 강의와 연구를 해왔으며 증오범죄, 어퍼머티브 액션, 일본인 강제수용 등에 관한 저서를 펴낸 인종차별 및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 전문가이기도 하다. 또 지난 2010년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센터에 미국 최초로 신설된 ‘코리아타임스 한국일보 코리안 아메리칸학 석좌교수’를 맡기도 했다.

<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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