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한 몸이 두 몸이 되기까지

2020-05-20 (수) 모니카 이 부부가족치료사
크게 작게
Covid-19이 평범한 일상을 삼키지 않았다면 5월의 대학교 졸업식과 6월의 고등학교 졸업식으로 한참 분주했을 계절이다. 상상도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은 우리의 많은 것을 앗아갔고, 특히 2020년 졸업생들에게 ‘졸업식 상실’이란 평생 남을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혹시 가족이나 주위에 2020 졸업생이 있다면 어느 때보다 더 큰 축하와 선물로 격려하면 좋겠다.

졸업식을 하던 못하던, 처음 킨더가튼에 입학했던 코흘리개가 13년 동안 부모와 스승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성인이 되고 ‘진짜’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벅찬 시간임은 분명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렘과 부모 그늘을 떠나는 자유와 함께, 익숙하고 안전한 곳을 떠나 낯선 세상을 향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교차되는 시간이다. 평생 옆에 끼고 살려고 자식을 키운 건 아니니 언젠가는 분명 떠나보내야 하는데 ‘잘 떠나보내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자식은 한 몸에서 두 몸이 되느라 힘들고, 부부는 두 몸이었는데 하나가 되느라 힘들다’라는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 뱃속에서 모든 것을 100% 제공받고 살다가 세상에 태어나고, 한동안은 세상의 중심 같은 전적인 보호와 돌봄을 받고 산다. 그러나 2살쯤 되면 아이들은 자신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엄마와 내가 다른 몸을 가진 다른 존재라는 자아 인식을 갖게 되고, “싫어” “NO”라는 말로 ‘나는 엄마가 아니야. 난 다른 사람이야’라는 바운더리를 긋기 시작한다.


두 번 째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부모와의 객체화를 선언하는 때가 사춘기 때다. 아직은 부모에게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도움은 받고 있지만, 가족 밖의 세상-학교, 친구, 이성친구 등-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찾으려 하는 시기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이 과정을 지켜보는 건 큰 배신감과 상실과 분노를 겪을 수 있다.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녀가 나의 존재와 행복의 이유인 부모는 자녀를 보내는 일이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이유의 상실이기 때문에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녀들이 짊어져야할 짐을 대신 져주며, 그들의 해결사의 역할을 자초한다. “넌 내가 필요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스스로 “난 필요한 존재야”란 존재감과 위로를 느낀다. 또한 자녀가 떠난 후 ‘빈둥지 증후군’으로 힘들 수 있으므로, 사춘기 자녀가 부모를 밀어내기 시작하면 부모는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시작할 때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연민과 죄책감을 유발하는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자녀가 죄책감에 눌려 못 떠나게 만든다. 내담자들 중에는 성인이 되고도 경제적, 심리적으로 부모를 떠나지 못하거나, 반대로 자녀를 못 떠나보내서 부부관계나, 시댁 또는 친정과의 얽힌 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종종 본다.

아이들이 7학년 때 한 말이 생각난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살 날이 6년 남았네. 그 후에는 네가 집을 떠나 혼자 살아야하니까 앞으로 6년 동안 네가 혼자 살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싶은데 어때?” 아이의 흔쾌한 승락이 있은 후 아이에게 밥하고 빨래하는 법, 전구와 에어필터 교체 등 크고 작은 집안일들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하나씩 가르쳤다. 10학년부터는 은행과 현금카드를 열어 돈을 쓰고 관리하는 법을 배우게 했고, 아직 내 품에 있을 때 실수를 통해 ‘진짜’ 세상을 사는 교훈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매년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제 5년만 살면 떠나네” “와~ 3년 남았구나”라고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함께 살 남은 시간을 세어보는 일은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홍역이 언젠가는 끝나는 싸움임을 일깨워줘 견딜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온 가족이 집에 갇혀서 함께 지내는 요즘, 자녀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한 ‘잘 떠나보내기 프로젝트’를 오늘부터 같이 준비하기 시작하면 좋겠다.

<모니카 이 부부가족치료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