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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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인생

2020-05-16 (토) 이현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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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몹시 내성적인 부모님을 닮아 꽤 내성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를 그분들과는 좀 다르게 키우고 싶어하신 나머지, 온갖 회유와 반쯤 협박을 통해 반장 선거에 나가게 만드셨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를 반장으로 살았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5년이었다.

나는 교무실에서만 인기 있는 아이였다. 성적이 좋고, 미련하게 책임감만 강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소처럼 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늘 겉돌았다. 단짝 하나 없이 구석에서 책만 읽는 애늙은이였다. 심지어 90년대의 초등학교 교실은 여자 반장에게 ‘암탉이 울면 재수없다’는 소릴 지껄이는 놈들이 아직 멸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빈틈을 찾아 맴돌다가, 여자 반장의 실수를 발견하면 매우 기뻐했다. 나는 가끔 나의 성별이 결코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짐승들을 주먹으로 다스려야 했다. 여러 모로 괴로운 나날이었다. 교실이 정글이라면, 나는 마치 늙은 코끼리처럼 외롭고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년 연속 선거의 여왕이었다. 인기도 없지만 흠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반의 대표가 될 사람에게 눈에 띄는 결함이 있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수다쟁이가 자습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내 이름을 칠판에 적는다면 억울하고, 바보가 담임을 도와 내 숙제를 채점한다면 자존심이 상한다. 욕쟁이가 ‘타의 모범을 보이는’ 자리에 있다면 꼴 보기 싫고, 청소시간에 남들만큼 쓸고 닦지 않는 뺀질이가 이래라 저래라 하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다행히 나는 수다쟁이, 바보, 욕쟁이, 뺀질이가 아니었다. 약속을 하면 잘 지켰고, 욕을 먹더라도 정직했다. 악착같이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탔기 때문에 무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선출되면 일을 열심히 했으니 결과가 검증된 후보였고, 친구가 없으니 비선 실세도 없었다. 애들 눈이 그렇게 매서웠고, 초딩 반장되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화려했던 나의 정치 인생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반항기로 접어들며 막을 내렸지만, 스무 해가 지난 요즘, 뉴스를 보면 옛 생각이 샘솟는다. 특히 연말에 재선을 노리고 계신 분의 스케일이 남달라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린 이번 연말에 진짜 어른들의 세계와 초등학교 교실 중 어느 쪽의 수준이 더 높은지 알게 될 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렘 아닌 두려움으로.

<이현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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