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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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의사가 남긴 희망

2020-05-15 (금)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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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19와의 싸움은 주로 병원에서 일어난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 그들을 돕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의료진은 극심한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할 수 있으며, 적극적 도움 및 치료가 필요하다.

지난 4월26일 코로나 환자를 돌보던 뉴욕 한 병원의 응급실장 닥터 로나 브린(Dr. Lorna Breen, 49세)이 감염-투병-자살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200명의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에서 약 60여명의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했고, 여기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감염되어 10일간 회복기를 거쳐 복귀했지만 상태가 다시 나빠져 요양을 갔다. 가족들에 의하면 환자들의 극심한 고통과 공포에 대해서 자주 비통해했으며, 마지막에는 넋이 나간 것처럼 이야기했다고 한다. 평소 스노보드를 즐기던 건강한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어떤 정신질환 병력도 없었다고 전한다.

극심한 과로와 PTSD를 앓은 것으로 보인다. 여동생은 언니가 코로나 병균이 직접 뇌에 장애를 일으켜 이 두가지 요소가 자살이라는 행위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 의사의 상태는 알지 못하지만 극심한 과로는 일반 용어로 burn out, nervous breakdown, Mental breakdown을 일으킨다. 이 증세들을 나의 45년의 임상경험으로 설명하면 첫 번째 우울증에는 절망감, 무의미감, 도움 받을 수 없다는 생각, 무력감, 자책감이 찾아온다. 두번째 불안 장애는 안절부절, 집중력 저하, 건망증, 패닉 증세(죽을 것 같은 공포, 호흡 곤란, 맥박 상승)이다. 세번째 급성 스트레스 장애 증상은 악몽,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쉬지 못하고, 말을 횡설수설 하든지, 울고, 웃고, 갑자기 화를 내든지, 플래시백이 생기든지, 그저 멍하니 있기도 한다.


네 번째 정신이상 증세는 망상, 환청, 환시를 동반한다. 공포와 분노가 내부로 향하면 극도의 자책감으로(남의 잘못까지 내가 지고) 자기파괴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나는 벌 받아 마땅하다. 죽어라. 죽어야 구원을 받는다.’라는 명령 환청을 듣기도 한다. 외부로 향하면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든지 ‘누가 나를 따라 다니고 감시한다. 나를 또는 우리를 해치려고 한다’는 피해망상으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파괴적 폭행, 총기난사 등의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반대로 조증과 같은 증세, 극도의 자신감, 기발한 생각, 특별한 약이나 치료법을 발견했다는 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외계인이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심리적, 신체적 통증과 공포를 유발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명을 끊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증세가 있으면 정신과 상담, 약물치료, 입원치료까지 고려해야 한다.

닥터 로나 브린의 죽음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코로나로 인한 뇌병으로 이해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환자와 동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자기 건강도 돌보지 않고 남김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 고귀한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이 혼돈의 시간에 그녀는 우리에게 한줄기 빛나는 희망을 남겨주었다. 이런 딸을 길러준 부모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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