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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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차이니즈 바이러스’

2020-05-13 (수) 허경 /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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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미국의 방송과 미디어는 지난 3년간 페미니즘과 여성서사로 가득했다. 여성 인권문제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러한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미디어의 방향이 아시안에 대해서도 바뀌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과거엔 버벅대는 영어, 촌스러운 브릿지 헤어, 소심하고 수동적인 말투 등이 미국 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아시아계의 고정관념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 사이에 아시안 문화, 특히 한국의 문화가 가장 힙하고 쿨한 문화로 인정받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케이팝이 북미에서 주류 문화로 떠오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BTS와 블랙핑크의 파급력은 이례적이다. 미국에서도 톱스타만 출연하는 토크쇼에 출연하고 코첼라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넷플릭스에서 한국계 미국인 여고생의 로맨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대흥행을 거두며 후속편까지 제작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상 4관왕을 휩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맨얼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뉴욕에서 한국인이 폭행당해 턱이 탈골되는 피해를 입는 등 매일 새로 올라오는 ‘아시안 혐오’ 기사를 보면 참 안타깝다. 미국은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임을 자부하지만 결국 사회 깊숙이 내재된 인종차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아무리 케이팝 문화에 열광한다고 해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아시안들 그 자체를 ‘차이니즈 바이러스’로 경멸하는 이중적인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

혐오와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기에 미국이 ‘완전한 평등’한 나라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함께 분노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허경 /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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