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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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도 면역이 필요하다

2020-05-09 (토) 김영미 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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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운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때는 힘든 노동보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를 겪을 때였다. 모든 노력을 다하고, 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쯤, 우리가 다한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자연은 깨닫게 해주었다.

지나고 보니 힘든 시기였지만 크고 작은 시련들을 겪으면서 더 큰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면역과 내성이 내 안에 생겼던 것 같다. 우리는 작은 실패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 실패는 내 안에 더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면역체계를 형성하고, 겸허함으로 성취나 성공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실패를 극복한 후 성공의 아름다움도 누리게 한다.

과학적으로 항원과 백신은 같은 병원균이지만, 병원균을 이겨낼 항체를 형성한 것이 백신이므로 결과는 판이하다. 삶의 과정에서 만나는 실패도 병원체로 오인받을 수도 있지만, 우리 삶에서 항체를 형성하는 백신이 되어 결국 어떤 시련이라도 잘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느 해는 가뭄으로 내 마음까지 바짝바짝 타들어 가던 때가 있었고, 또 어느 해는 수해로 물에 잠기거나, 우박 피해, 서리 피해가 몰아칠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확기에 접어들을 때쯤 불어닥치는 태풍은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다 밤새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에 잠을 설치고 난 후, 아침에 과수원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배들을 바라볼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 이상 과수원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의욕을 꺾어 버렸다. 일년 동안 뙤약볕에서 일한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은 정말 너무 놀랍고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눈물도 나지 않는 경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빠 좌절할 틈도 없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재해들을 겪으면서 시련에 대해 조금은 더 의연해지는 내성이나 면역이 내 안에 형성됐던 것 같다. 조급함과 욕심과 같은 모난 부분들이 깎이고 다듬어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재해를 겪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꿈꾼다. 그러나 좀 천천히 가도 되고, 섰다가 가도, 돌아가도 된다. 그 길을 가서 만나는 다른 모습들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면역이 필요하다. 독감처럼 찾아오는 크고 작은 상처와 시련들을 이겨낼 그런 면역이 필요하다.

<김영미 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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