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날” 이라고 하면 손꼽아 가슴 졸이며 밤샘을 하고 기다리는 희망의 날이 있는가 하면, 반면 듣고 말하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을 가슴 속 깊히 숨겨 둬야만 하는 구슬픈 날도 있는 것이 요지경이라는 우리들의 세상살이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어머니 날’ 만큼은 학수고대 하며 온 가족이 기쁨을 함께 하기도 하고 찢어질듯 하는 아린 마음에 슬퍼하는 괴로운 날이기도 하다. 나의 마음은 후자다!
지난 정초 학벌에도 없는 8.6 학년에 월반한 오늘날에도 ‘어머니’란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니 서글픈 사나이가 아닌가 싶다.
6.25 참전 직후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허덕이는 조국에 부모님과 가족을 등지고 희망찬 대학 유학길에 올라 환갑이란 세월을 이 땅에서 파란곡절 지내면서 어머님 한번 재대로 못 모신 것이 늘 한에 맺혀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차지하고 있다.
교육자이신 나의 어머님은 6.25 동란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허덕이는 이 판국에 어찌 우리가 감히 ‘은수저’ 로 호식 할 수가 있겠느냐” 고 하시며 청운의 뜻을 담은 유학길에 오른 만큼 훌륭한 인재가 되어 돌아와 조국 건설에 이바지 하라는 정신으로 ‘전가족의 은수저'를 팔아 학비로 주신 지극한 어머님이셨다.
그 지극하신 어머님의 정성에 한 번도 보답하지 못한 이 소생을 늘 책망하고 살아올 뿐 이다. 그러나 그 은수저가 새겨준 어머님의 정성어린 교훈은 물론이고 그 소중한 가치관이 나의 일생을 인도해준 소신의 철학이 된 것이다.
국가, 사회 그리고 나의 가족이란 인생철학을 주신 장엄한 어머님의 별세를 지켜본지 어언 2 세기란 긴 세월이 흘러갔건만 나의 ‘생일날’ 이 되면 우체통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슬쩍 손을 넣어 살펴보는 어리석은 나의 마음 속에는 혹시라도 ‘내 엄마의 생일카드’ 가 오지 않았나 하는 부끄럽고도 가냘픈 심정이다.
아무리 나의 가족과 친지들이 이 세상에 없는 선물로 향수에 감싸줘도 내 엄마의 카드 한 장에 담긴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잘 있었느냐, 오늘은 네 생일이구나…” 하신 말씀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반세기를 두고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주신 말씀으로 내 몸이 한 줌의 흙이 되어도 그 흙 위에 길이 새겨지리라 믿는다. 아버님과 함께 고국 땅에 편히 안장되어 계신 어머님을 그리며 공원을 찾아 나선 길목에 젊은 엄마와 아들이, 엄마는 아이스크림 한 개, 그리고 아들은 마구 흘러내리는 콘 두개를 양 손에 들고 코로 빨아먹는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 추억에 사로잡히게 한다.
무더운 한 여름날, 엄마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면서 ‘아이스케이키’ 상점마다 들러 배꼽이 터져 나가도록 실컷 빨아먹으며 엄마 앞에서 낄낄대며 재롱부리던 그 시절이 또 한 번, 아니 딱 한 번만 와 줬으면!
“엄마,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이 불효자는 김희갑 선생님의 ‘불효자는 웁니다’ 를 부르며 ‘오지 않는 엄마의 생일카드’ 를 늘 마음속으로 받아 본답니다. 오늘은 ‘어머니 날'이에요. 엄마, 사랑해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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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종/뉴욕지역한인회 연합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