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살아 있다는 것

2020-05-04 (월) 전태원 자유기고가
크게 작게
입원 9일만에 귀가했다. 살아 돌아온 것이다. 지난 4월18일 응급실로 급송돼 6일만에 퇴원할 수도 있었는데 이미 코비드-19 확진자로 입원하고 있는 아내가 돌발 위급상황으로 중환자실로 실려가면서 혈압이 오르고 이상증세가 포착되어 일단 나의 퇴원도 보류됐다. 귀가해서 혹여 잘못될까봐 담당의들이 의논, 3일 간을 더 지켜본 케이스다.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일단 감염되면 미국 내 확진자의 10%가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퇴원 4일째인데 그동안 16파운드가 빠졌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런데 아내는 아직도 산소호흡기에 의존, 의식이 없는 상태로 견디고 있다. 호흡기가 아니면 죽은 목숨이다.

퇴원 한 시간 전 담당의와 간호사들의 특별배려로 전신을 휘감은 나는 아내가 있는 중환자실 독방 입장이 허용됐다. 절대 불가능한 일, 미국정부를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싸운 경력을 인정, 배려한 전무후무한 케이스다.


의식 없이 산소호흡기에 생을 부지하고 있는 아내를 보자 주체할 수 없는 슬픔,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고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절규하고 통곡을 했다. 평생을 좋은 일만 한 아내는 직장에서 감염되었다.

특수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아내의 얼굴, 뺨, 손등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과 나를 옆에서 간호사가 도와 비디오 촬영을 해줬다. 아내를 향해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살아야 해!” “절대로 혼자 못가!” “하느님! 기적이 있다면 아내를 살려주세요!”라고 다짐했다. 다행히 아내의 얼굴, 손 모두의 체온이 따뜻했다.

밖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나오자 등을 다독거려주었다. 이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기적만을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팔십을 넘기는 죄 많은 나에게도 기적을 행해주셨으니까.

먼저 소천하신 어머님께 빌었다. ‘이 사람 살려주세요!’

22년전 세상을 떠난 아들놈에게도 빌었다. ‘엄마를 살려내!’

주말학교 교사와 양로원 매니저로 두 직장을 동분서주하면서도 치매 걸린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천사 같은 며느리였고, 아이들 잘 키우려고 17년간 전업주부로 혼신의 모정을 다해 자식들을 키운 착한 엄마였다.

나 혼자 살아 귀가한 집에서 아내의 따스했던 체취를 느끼며 이 글을 쓴다.

<전태원 자유기고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