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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교과서를 쓰는 나라

2020-04-23 (목)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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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코로나 코리아’가 국민들에게 안겨준 자부심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코비드-19 사태는 국가적으로 큰 도전과 시련이었지만 정부의 투명하고도 효율적인 대처와 국민들의 뛰어난 시민정신이 결합하면서 한국은 각국 정부와 언론들로부터 ‘가장 성공적으로 코비드-19에 대응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각국의 부러움 섞인 평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집단적 자부심을 안겨주었으며 이런 정서는 총선에서 여당을 향한 지지로 표출됐다.

성공적인 방역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도 주인으로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온 수천만 유권자들의 행렬 또한 다시 한 번 다른 나라들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심지어 선진국들까지 코로나 사태로 선거를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고 있는 가운데 치러진 한국 총선에 국제사회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방역조치가 철저히 취해진 가운데 투표장에 나와 질서정연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한국 유권자들의 모습은 외국인들 눈에 경이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한국에서 총선을 지켜 본 한반도 문제 전문가 존 델루리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그 누구도 자신들의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는 일과 건강을 지키는 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고 투표장의 뜨거운 참여 열기를 전했다. “총선의 진정한 승자는 코로나19를 두 번 이긴 한국”이라는 평가 속에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정상국가의 면모를 지키며 감염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존경이 담겨있다.


코비드-19가 급속히 확산하자 어찌할 바 모른 채 우왕좌왕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까지도 한국의 방역사례를 연구하고 관계자들부터 조언과 자문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 한국의 진단키트와 방역정책 공유를 원하고 있는 나라는 130개국을 넘는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한국은 “교과서 같은 우수 사례”로 계속 언급되고 있다.

‘교과서’는 해당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실 혹은 사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을 교과서로 여기면서 그들의 방식을 답습하고 따라하려 애써왔다. 하지만 최소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앞 다퉈 배우려하는 교과서를 한국이 써내려가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 사태로 선진국들의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기 상황이 되니 어디가 문명국인지 어디가 야만국인지, 또 돈 제일주의 자본주의가 어떤 민낯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문명국이자 민주주의 국가이고 선진국임을 새삼 깨달았다”며 한 시민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공적인 방역은 코로나 이후 예상되는 경제적 여파를 줄이는 것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IMF가 내다보는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 한국은 -1.2%로 OECD 국가들 가운데는 그나마 가장 괜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코리아’를 통해 고양된 감정과 자부심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한국국민들의 가슴과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서양의 눈치를 보면서 한국의 뛰어난 점을 알리지 못해 안달하던 시대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인식의 변화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달라질 세계와 관련한 전망 중 하나는 서양 우월주의가 쇠퇴하고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온 국제질서도 개편될 것이란 예측이다. 그 중심에 한국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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