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구심은 그것이 아주 어두운 데서 생겨나는 그 무엇이다, 존 버거, 그는 아직 못다 한 말에 취한 듯, 봄빛이 아른거리는 가던 길을 되돌아와 안을 기웃한다. 오랜 신문 스크랩에 그의 아득한 눈빛, 그의 시선은 하늘 너머로 응시하고 있다, 하늘 저 아득한 그 곳으로, 그의 눈빛이 물에 젖어 반짝인다. 은밀하다, 참되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 그는 자라지 않는 영원히 성숙한 소년이다, 아슴한 듯 그 때 집을 떠나 고향처럼 살고 있는 이곳, 푸르른 산 저 멀리 얌전히 있던 집은 푸른 집착체가 되어 내 안에서 어머니의 물그런 살냄새를 풍긴다. 모난 것 뾰죽한 것은 뭉실 뭉실 자카란타 연분홍 꽃이 뽀얀 손바닥으로 닦아놓는다.
시를 쓰는 건 사랑을 하는 것, 아니 사랑을 배우는 것, 그러므로 시인이 되는 건 상처를 사랑해야지 (그러나 시인만이 그럴까, 시인대신 사람을 넣어보자), 누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오늘 저 빌딩 숲 너머 아슴프레 산맥을 넘어 응시하는 나비 한마리를 본다. 우리의 무심하고 오만한 문명의 어딘가에 날아와 우리의 거리를 휘젓는 곱지 않는 (곱지 않다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하고 거대한 나비를 본다. 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름다운‘ 공기를 마음껏 숨. 쉴.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굳어진 흙을 파고 물을 흘러내리고 씨앗을 심고 식목을 할 일이다. 봄은 기다리는 것인가, 그냥 기다리는 봄은 봄이 아님을 우리는 알았다. 나비는 벼랑 끝 over-stepped 한 기존의 문명을 갈아치우라고 잠시 정지하라고 강요한다. 대신 그가 준 공포와 불안을 대항하라 한다.
인간 순수에 투항하여 투쟁하고 꿈꾸고 믿음의 씨앗을 파종하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믿음으로 편안하여 기다리는 것, 너와 나, 마음의 손을 잡고, 용서를 바라면서... 그런 것을 그는 우리에게 암시한다.
우리 모두 투쟁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 것인가? 이 후에 올(?) 새로운 문명질서, 두 손으론 물리적으로 마음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을 againt하여, for는 그 순수 정신을, 그 순수는 모든 인류에게 평등이다. 시인들도 어둠에서 흰 복사꽃을, 튤립을, 차가운 겨울에서 봄꽃을, 시인들의 정신은 발길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
가슴도 달라지고 있다, 더 성실하고 겸손하여 참 진리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 이것은 분명 코로나의 선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속지 말자, 누가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는 그 말로 세기의 갈채를 받고 그래서 방황하는 우리의 세기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는 시다, 변하지 않는 인간 사랑이다. 시인은 변치 않는 그 사랑...창조의 변치 않는 율법, 그 사랑의 율법을 찾아가는 순례자임으로, 그러나 내일 우리 모두는 무엇이라 말할까?
겨울나무가지 얼키어서/ 보름달 줄금을 긋고 있다/ 멋 부리는 화가처럼/ 서툰 외과의처럼/
화가는 여기저기 아무렇게 복선을 긋고/ 초년생 외과의는 수술대에 누운/ 그의/ 멀쩡한 팔 다리를 자른다/
그러나 너는 멀쩡하구나/ 칼날 같은 겨울나무 가지/ 저 보름달의 둥근 얼굴 긋지 못해,/ 너의 몸은 피를 흘려도/ 더 가지른 꿈의 황야를 발굴하여/ 더욱 먼 은하수에 팔을 벋는다/ 별들을 안아드린다/
새로운 신 광년을 발굴하여/ 아아, 황야를 달리는/ 너의 장신 굵고 힘찬 다리/ 보름달은 여전히 보름달이다! (“보름달” 곽상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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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희/ 국제계관시협회(UPU) 계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