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위협하면서 주목받은 인물이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다. 정확히 5년 전 그는 TED 컨퍼런스에서 장차 세계적 재앙을 몰고 올 것은 핵이 아니라 바이러스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앞으로 수십년 내에 1,000만명을 죽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건 전쟁이 아니라 대단히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일 것입니다. 미사일이 아닙니다, 미생물입니다.”
당시는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했던 에볼라 출혈열이 막 수그러들고 난 후였다. 1만명의 사망자를 내기는 했지만 그 선에서라도 통제가 된 것은 첫째, 에볼라바이러스가 공기전염이 아니고 둘째, 감염자가 아주 중증이 된 후에야 전염성을 갖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역병이 시골에서만 퍼지고 도시로 확산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니 다음번에도 그렇게 운이 좋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고 그는 경고했다.
“감염되고도 별 증상이 없어서 사람들이 비행기도 타고 마켓에도 가는 그런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전 세계로 매우,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겠지요. 유행병으로 3,000만 명이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지금 현실이 된 것이다. 게이츠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미디어들은 흥분해서 보도했었다.
그에게 앞날을 보는 ‘신기’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가난과 질병 퇴치를 위해 천문학적 기금을 쏟아 부으며 수십년 관심을 기울인 끝에 얻은 과학적 지식 덕분일 것이다. ‘신기’가 아니라 ‘과학’이니 문제는 심각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유행병이 닥치리라는 전망은 사실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 해 전부터 있어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 미지의 유행병에 ‘질병 X’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2016년 WHO의 감염병 연구개발팀은 대유행병 대응전략을 세우면서 에볼라, 지카, 사스, 메르스 등을 대상으로 정했다. 세계적 공중보건을 위협하면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거나 미비한 질병들이 대상이었다. 그리고는 2018년 질병 X를 추가했다.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신종 병원체가 일으킬 미지의 유행병을 의미했다. 무엇인지 모르니 X가 붙여졌다.
질병생태학자 등으로 구성된 연구개발팀이 생각한 질병 X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동물에서 인간에게 넘어온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가 병원균으로 경제개발로 인해 사람과 야생생물이 혼재하게 된 어딘가에서 나타난다. 둘째, 발병 초기 다른 병들과 증상이 비슷한 가운데 사람들의 여행과 무역 연결망을 이용해 소리 소문 없이 그러나 빠르게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다. 셋째, 계절성 독감처럼 쉽게 전염되면서 치사율은 독감보다 높고, 팬데믹 수준이 되기 전에 금융시장을 흔들어 놓는다.
이 역시 지금의 코로나19와 딱 들어맞는다. 코로나19가 질병 X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제2, 제3의 질병 X가 도래할 가능성이다.
질병생태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사스 발발(2002~2004년) 직후인 2005년부터였다. 이후 이들은 지난 15년 줄기차게 미지의 유행병 위험을 지적해왔다. 사스나 에볼라, 메르스 등 당장의 바이러스 감염병을 해결해서 될 일이 아니라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확신의 근거는 생태계 파괴이다. 개발이 멈추지 않는 한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는 계속 출현할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삼림 파괴는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 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삼림은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수많은 종의 동식물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들 보이는 생명체 안에는 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개발은 이 엄정한 자연의 영역에 인간이 들어가 수백수천만년 이어져온 종의 균형을 파괴하는 일이다.
고목들을 자르고, 동물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시장으로 가져가면서 생태계는 파괴되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숙주 안에 안주하고 있던 바이러스들은 밖으로 흩뿌려진다. 바이러스들은 새로운 숙주를 노리고, 야생동물들이 쫓겨난 개발의 현장에서 숙주로 삼을 종은 종종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는 탄생한다.
찬란한 인류문명은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여지없이 허점을 드러냈다. 개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똑똑한 우리가 얻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외딴 지역 어느 개발현장에서 어떤 낯선 바이러스가 종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몸으로 침투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조만간 알게 될까봐 두렵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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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