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지내는 노숙인과 반갑게 인사하는 박야고보 수녀.
엄혹한 상황에서도 바티칸 노숙인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전하는 로마 거주 ‘꽃동네’ 소속 박야고보(본명 박형지) 수녀의 흔들림 없는 선행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바티칸 노숙인들의 동반자’로 소개된 야고보 수녀는 코로나19의 삭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바티칸 성베드로광장 노숙인을 지켜주고 있다.
야고보 수녀는 2015년 11월 초부터 매주 목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이곳 노숙인들을 위한 ‘주먹밥 만찬’을 준비해왔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역병 사태를 맞아 당연히 활동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지레짐작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교류를 일시에 중단시키고 글로벌 경기마저 끌어내린 코로나19의 위력도 야고보 수녀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 것이다.
야고보 수녀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4년간 지킨 의리가 있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냐”며 웃었다. 모두가 위험하다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자신마저 떠나면 오갈 데 없는 그들의 한 끼는 누가 챙겨주냐는 생각에 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바이러스가 이탈리아 전역을 휘감으며 사망자가 쏟아져나오는 등 인명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소식에 야고보 수녀 역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단한 일도 아닌데 이것마저 그만두면 나중에라도 그들을 볼 면목이 없을 거 같다며 고민을 떨쳤다”고 야고보 수녀는 전했다.
야고보 수녀는 음식 장만과 현장 배식을 지원해온 신부·수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료 수녀와 단둘이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모두가 동시에 위험에 빠질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행여나 자신이 감염돼 격리되는 상황이 오면 신부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담겼다.
노숙인들도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아는 터라 야고보 수녀가 주먹밥을 주고자 다가오면 스스로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한다. 야고보 수녀는 그들의 그러한 배려심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모든 게 단절된 상황이라 노숙인들이 하루 한 끼를 채우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먹밥 하나를 만들 때 들어가는 밥의 양도 더 늘렸다고 한다.
야고보 수녀는 “이탈리아 정부의 이동제한령으로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여드는 노숙인 수가 더 늘었다”며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길 묵묵히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이 고난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숙인과 함께 하는 유럽 비영리조직 ‘FEANTSA’에 따르면 이탈리아 주요 도시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수는 5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로마에는 8천여명의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