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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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춤’이라는 선물

2020-03-27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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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지난주 생일을 맞았다. 아들부부가 손녀 데리고 집에 오겠다는 걸 말렸다고 한다. 같이 어울렸다가 혹시라도 아이가 아프게 될까봐 겁이 나서였다. 지인 한분은 얼마 전 딸의 생일에 함께 하지 못했다. 여러 사람 모여서 좋을 게 없다는 가족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각자 따로’가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와 섞이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가족들이 모이는 것조차 피하는 이상한 시절이다. 이 식당 저 술집 그리고 어느 카페 … 우르르 몰려다니며 얼굴 맞대고 웃고 떠들던 일들이 먼 과거처럼 아득하다. 고개 돌리면 바로 다른 사람 얼굴이 다가들만큼 빽빽하던 영화관이나 음악회는 더더욱 아득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위기에 대처할 재정형편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고립. 혼자 혹은 가족단위로 모두가 섬이 되었다. 섬 안에 갇혀서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겨우겨우 하고 있다.


“집안이 더 안전하다” 거나 “집에만 머물라”는 행정명령에 미국인구의 3분의 1이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생활을 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 모두 외톨이가 되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고립, 단절은 본성에 반하는 일. 같은 교도소생활이라도 독방 감금이 더 엄한 벌이 되는 배경이다. 외출자제령 시행 한주가 되기도 전에 “답답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나” “오늘은 또 뭘 하나” 하소연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으로서 우리의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팝스타 마돈나가 “코로나바이러스는 차별 없이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지만, 사실이지 평등하다. 접촉이나 비말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고, 면역력이 약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으며, 그래서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그리고 사회적 단절이 건강을 위협하는 독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예외가 없다.

‘각자 따로’ 사는 이 생활은 인간의 조건에 맞지 않다. “이건 아니다”라는 신호가 뇌에서 마구 쏟아져 나온다. 불안과 외로움이다.

지난 2015년 브리검 영 대학 연구진은 340만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고립, 나 홀로 생활 그리고 외로움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스트레스호르몬이 증가해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고, 조기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 연구결과였다. 장기간에 걸친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외로움이 해로운 것은 그것이 단순히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고픔이 ‘음식을 찾아 먹어라 아니면 위험하다’는 경고이듯, 외로움은 다른 사람을 찾아 함께 있으라는 생물학적 경고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혼자 떨어져있다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류의 조상들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생명을 대가로 처절하게 학습한 결과이다.

그러니 ‘각자 따로’ 있어도 외롭지는 말아야 하겠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우리에게는 있다. 매일 안부 전하며 소소한 재미를 나누고 ‘답답하다’ 푸념이라도 함께 한다면, 그래서 뇌가 ‘같이 있는 거로구나’ 하고 속는다면 외로움으로 건강을 해칠 일은 없을 것이다.

칩거명령 혹은 외출자제령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시간이다. 재클린 오나시스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원하는 물건은 다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소중했던 소유물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단 10분이라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 귀한 시간을 코로나19가 우리에게 풍성하게 선물했다. 갑자기 시간의 부자가 된 이 특별한 축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항상 마음만 있었을 뿐 (시간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침내 해볼 기회이다.


책장에 오래 쌓여있던 책들을 드디어 읽을 수도 있고, 클래식 음악을 찬찬히 공부해볼 수도 있으며, 옷장의 옷들을 정리할 수도 있고, 요리공부를 해볼 수도 있으며,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 걸을 수도 있고, 깊이 명상을 할 수도 있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다.

2020년 봄 우리의 일상은 중지되었다. ‘잠깐 멈춤’의 시기가 느닷없이 닥쳐왔다. 그것은 재정적 곤란이기도 하고 정신적 불안이기도 하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이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견뎌낼 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각자의 몫이다.

“신의 섭리라는 우물은 깊다. 우리가 우물에 들고 가는 양동이가 작을 뿐이다.” 20세기 초 영국소설가 매리 웹의 말을 음미해본다.

‘멈춤’은 축복일 수 있다. 이전의 삶을 돌아보고 내일의 삶을 가다듬는다면, 그래서 중지되었던 일상이 재개된 후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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