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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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깊이 노란 리본을

2020-03-2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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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에 가면 국립2차세계대전박물관(The National WWII Museum)이 있다. 재즈의 본산인 이곳에 재즈박물관을 제치고 꼭 가보아야 할 관광지 1위로 이 박물관이 선정된 것은 실제크기 비행기, 전차, 각종 무기뿐 아니라 태평양지역 전투와 대서양지역 전투관련 동영상, 사진, 기록물 등을 방대하게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D-Day에 병력을 오바마 해변에 실어나른 수륙양용전차(Higging Boat)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전차를 제조한 공장이 뉴올리언스에 있었다. 전쟁 후 태평양전투의 전시물을 수집하면서 당연히 이 전차가 들어갔고 디데이 박물관이던 이름도 2차세계대전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 박물관을 얼마 전 직접 가보았는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가장 눈에 뜨인 것이 전장에 두 아들을 보낸 늙은 어머니 사진과, ‘GOD BLESS OUR HOME’ 라고 수놓인 작은 액자였다.


가족 중 누구라도 군 복무를 하고 있다면 문이나 창문에 휘장을 걸어놓는데 두 아들을 전선에 보낸 늙은 어머니 표정이 담담하면서도 슬펐다. 또 흰 목면천 위에 빨간 지붕을 한 홈 주위로 온갖 예쁜 꽃들과 나무가 수놓인 전원 풍경은 ‘미국은 이긴다’, ‘우리는 해낸다’는 어떤 포스터보다 그 간절한 마음이 와 닿았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코로나로 고통 받는 환자들, 그 환자를 살리려고 프론트 라인에 선 의료진들이 있다. 주위에 뉴욕의 한 병원에 간호사 딸을 둔 부모가 있다.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딸은 코로나19 중환자실에서 일하는데 혹여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해질까 고기를 잔뜩 재어 맨하탄 딸의 집으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집 앞에서 멀리 거리를 두고 서로 눈으로만 아는 척 하고 음식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혹여 환자에게 감염되지 않을까 심장이 타들어가는 노부모의 마음을 공감한다.

아무리 뉴욕 주 긴급행정명령이 재택근무를 하라지만 필수적인 업무의 영업장에서 일하거나 청소업, 간병인, 식당 파트타임 직원, 음식 배달부 등등, 이들에게 자동차가 다 있지는 않다. 별 수 없이 지하철과 버스,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리 난간이나 손잡이를 잡지 않고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오고간다고 해도 지하철 안 공기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두렵겠는가.

지난 15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시내 성당을 찾아 코로나 19를 멈추게 해달고 기적의 십자가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에 보도된 교황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을 안아주고 전화를 하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등 다정함과 애정, 연민을 전하는 것은 일견 사소하기도 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잊히기도 쉽지만, 이는 우리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말을 전했다.

요즘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노란 리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노란리본은 ‘무사귀환’의 상징으로 4세기 유럽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 청교도들이 미국에 정착시켰다.

노란 리본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9년 이란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 이란인질 사건이었다. 미국의 아내가 남편이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는 염원으로 집앞 나무에 노란 리본을 단 것을 시작으로 걸프전, 이라크전 등등 전쟁터로 떠난 미군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상징이 되었다.

모두 조금만 참자. 수퍼 갈 일을 줄이고 운동도 잠시 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자. 그 길이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전장에 나간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면 무사귀환에 감사하자. 모두 마음 속 깊이 노란 리본을 품을 때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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