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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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2020-03-20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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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텅 비었다. 어디서 ‘총탄’이 날아들지 몰라 모두가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비즈니스들이 문을 닫으면서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실직자들은 생계 걱정에 가슴이 천근이고, 마켓에 갈 수 없어 비상식량을 준비하지 못한 노인들은 애가 탄다. ‘적’보다 무서운 건 먹고 사는 일. 적의 총탄에 맞기 전에 앞날의 막막함 때문에 지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바야흐로 전쟁이다. 보이지 않는 적,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불과 100여일 만에 전 세계를 제패했다. 지난해 12월 중국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휩쓸고, 5대양을 가로지르며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6대주로 퍼져 나갔다. 복제와 변이를 거듭하며 변종/신종으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 신출귀몰한 미물 앞에서 인류는 장구한 세월 번번이 무너졌다. 그렇게 또다시 맞은 최신종 코로나바이러스 - 인류는 대적할 수 있을까.

바이러스는 태초 이래 있어왔을 것이다. 보이지 않으니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대표적 바이러스 감염증인 천연두의 경우, 기원전 1100년대 사람인 이집트의 람세스 5세 미라에서도 그 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197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완전 퇴치” 선언을 하기까지 천연두는 수천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우리가 보통 병원체로 싸잡아 생각하는 박테리아(세균)와 바이러스는 미생물의 세계에서 보면 천지차이이다. 우선 크기에서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에 비해 10~100배 작다. 박테리아는 비록 단세포이지만 생물인 반면 바이러스는 생물이라고도 무생물이라고도 할 수 없다. 생명체라면 마땅히 하는 영양섭취와 생리대사 작용이 없다. RNA나 DNA 중 하나의 핵산을 단백질 껍질이 싸고 있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 하찮은 미물은 다른 생명체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영악해진다. 숙주 세포의 단백질과 효소를 이용해 후손을 다량 복제한 후 세포 밖으로 방출한다. 숙주 세포는 파괴되고, 이들 복제된 바이러스는 또 다른 세포 안으로 침투하기를 반복한다.

유행병이 생기는 것은 대개 복제 과정에서 생긴 변이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형태와 능력의 변종으로 진화하면서 본래는 감염시키지 못하던 생물종까지 감염시키게 된다. 박쥐나 원숭이 등 동물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치며 인간에게 옮고 인체에 적응한 신종바이러스가 되는 식이다.

인류가 병원체와 대적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한 세기여 전부터이다. 그전에는 일방적으로 당했을 뿐이다. 질병을 신의 노여움이나 징벌로 믿었으니 대책은 없었다. 14세기 10여년에 걸쳐 페스트균이 유라시아 대륙 인구의 1/4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때도 사람들은 교회로 모여들었다. 함께 모여 손잡고 기도하는 동안 병균은 기세 좋게 퍼져나갔다.

인간과 병균의 전쟁이 전기를 맞은 것은 19세기 후반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라는 세균 병인설이 등장했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토 코흐가 그 선구자들로 이들은 탄저균, 결핵균, 콜레라균 등 세균 발견에 성공했다. 아울러 파스퇴르의 조수는 특수 필터기구를 만들어 세균을 걸러내는 실험을 했는데, 이때 박테리아보다 작은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바이러스 존재를 확인한 것은 1930년대 전자현미경이 나오고 나서였다.

적을 알게 되니 싸움은 할만 해졌다. 20세기를 거치며 세균성 질병들은 대부분 항생제로 다스려지고 있다. 파상풍, 결핵, 매독, 폐렴 등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도 진전은 있었다. 백신을 개발보급하고 감염증상을 확인해 발병자를 격리하는 방어책으로 사망자 숫자를 현격하게 줄였다. 아즈텍과 잉카를 멸족시킴으로써 아메리카를 유럽인들의 손에 넘겨주었던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소아마비 바이러스도 거의 정복 단계이다.

그럼에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요원하다. 변이가 심해 항바이러스를 만들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는 평범한 감기 바이러스의 변종으로 이전의 사스와 메르스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변종들이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바이러스를 인류는 허겁지겁 따라가는 모양새이다. 변종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해도 감염의 뿌리를 뽑으려면 전 인류가 백신을 맞는 것은 물론, 동물에서 유래했으니 그 동물들까지 접종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죽은 듯 잠잠하다가 어느 방심한 순간 고개를 내미는 괴기영화의 괴물 같은 존재가 바이러스이다.

현재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확산 방지. 위생수칙을 지키며 서로서로 거리두기가 기본이다. 아울러 국방과는 다른 차원의 안보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보건안보이다. 글로벌시대에 지구촌 누군가가 감염되면 전 세계로 확산된다는 것을 코로나19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는 하나이다. 바이러스 연구와 정보교환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모른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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