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손과 거리두기

2020-03-17 (화)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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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거리라는 말이 있다. 머리로 아는 걸 가슴으로 느끼며 실천하기가 너무도 어려워서 나온 말이다. 사랑해야 할 때 미움이 치솟고, 배려해야 할 때 배척이 앞서는 것은 대부분 머리 따로 가슴 따로 여서 생기는 일들이다.

반면 가장 가까운 거리는 손에서 얼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로는 머리와 가슴 사이에 비해 두배 정도 멀지만 손과 얼굴은 수시로 하나가 된다. 툭하면 손이 얼굴에 와있다. 초조할 때도, 화가 날 때도, 놀랄 때도 … 손은 어느새 얼굴 어딘가를 만지고 있다. 이마를 만지기도 하고, 코를 만지기도 하며, 눈을 비비기도 하고, 입가를 쓰다듬기도 한다.

물론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눈이 가려워서 비비기도 하고 코가 답답해서 문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냥 만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그러하니 인간의 보편적 습관이고, 무심결에 행해지는 일이니 무의식이고 본능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이 오래고 본능적인 습관이 눈총을 받고 있다. 바이러스를 우리 몸속으로 옮겨 놓는,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집어넣는 주범이 손이라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방지책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손 씻기 그리고 손으로 얼굴 만지지 않기이다. 눈이나 입, 코를 만지는 행동만 중단해도 바이러스 감염 위험은 대폭 줄어든다고 보건전문가들을 강조한다.

사실 우리 손이 더럽다는 것은 수시로 나온 경고이다. 언젠가 기술이 발달해서 현미경 안경이 보급된다면, 그래서 세균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자신의 손에 진저리를 낼 지도 모른다. 세균 덩어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쓰는 컴퓨터 자판에서 셀폰부터 사무실 문고리, 누가 앉았을지 모를 식당 테이블, 대중 화장실 등을 수없이 만지는 우리 손은 온 세상 세균들의 집합지이다. 눈에 안보이니 모를 뿐인데, 예를 들면 컴퓨터 자판에 변기보다 더 많은 세균이 우글거린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자판 두드린 손가락을 입에 넣고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는 순간 세균은 입안으로, 몸안으로 들어간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이다. 손은 이렇게 툭하면 얼굴로 향하는데 이 손을 붙잡아두기가 어렵다.

지난 2015년 호주의 한 대학에서 관련 조사를 했다. 의대생 26명을 강의시간에 관찰한 결과 학생들은 한 시간에 평균 23번 얼굴을 만졌다. 2.5분에 한번 꼴이다. 2008년 일반 사무실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자들이 시간당 평균 16번꼴로 얼굴을 만졌다. 대부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어나는 행동이어서 제어가 어렵다. 보건전문가들이 요즘 “제발 얼굴 좀 만지지 말라”고 강조를 해도 실천이 잘 안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왜 자꾸 얼굴을 만질까. 유전자에 박힌 행동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얼굴을 만지면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한다. 놀라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이마를 만지고 뺨을 만지게 되는 배경이다. 이는 태아에게서도 발견되는 행동이다. 임신 24주에서 36주의 여성을 대상으로 초음파 검사를 한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궁 안 태아가 얼굴을 만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니 손이 얼굴로 가는 것은 우리의 길고도 깊은 습관. 그 손을 얼굴로부터 떼어놓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 이상한 바이러스 시즌에 사회적 거리두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손과 거리두기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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