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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곰

2020-03-1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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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로 미 역사상 가장 길었던 주식시장의 황소 장세가 끝났다. 지난 2009년 3월 세계 금융 위기로 6,000대까지 떨어졌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불과 한 달 전 2만9,000대를 넘어서며 3만 돌파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다우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고는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더니 지난 11일 2만3,553을 기록했다. 이는 꼭 한 달 전인 2월12일 2만9,551에서 20.3% 하락한 것으로 11년 간 계속된 ‘황소 장’(bull market)이 끝나고 ‘곰 장’(bear market)이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다. 통상 증시에서는 10% 하락은 ‘조정’(correction), 20% 하락은 ‘곰 장’이라고 부른다.

이번 주가 하락이 놀라운 것은 그 속도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 한 달만에 ‘곰 장’으로 돌변했는데 이는 유례가 없는 스피드다. 통상 최고치에서 ‘곰 장’으로 바뀌는 데는 평균 136거래일이 걸린다. 평소보다 6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일단 ‘곰 장’에 들어선 후 바닥을 치는 데는 143 거래일이 더 걸리고 ‘곰 장’을 빠져 나오는 데는 거기서 다시 63일이 걸린다.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6개월 이상 하락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번 증시 하락으로 타격을 입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크루즈 업계다. 노르위전 크루즈 주가는 74%나 폭락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주가가 이처럼 급속히 떨어질 수 있는 지 의아해 하고 있지만 주가 폭락은 주식시장에 항존하는 위험이다. 다만 올 초까지 주식이 이상할 정도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며 올라 사람들은 잘못된 편안함 속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S&P 500지수는 작년 미중 무역 갈등과 중동 테러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27%나 올랐으면서도 지난 10월부터 올 초까지 1%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은 지난 50년 동안 6번밖에 없었다. 이런 장기간의 미미한 등락 뒤에는 폭락세가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고 뒤통수를 치는 게 곰의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황소 장’이 끝난 게 아니라 이토록 오래 지속된 것이 놀랍다. 1%의 낮은 금리로 갈 데 없는 돈이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기만 하는 주식으로 몰려들었고 오르는 주가가 더 많은 돈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현재 주가가 적정한 선인가를 재는 여러 척도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이름을 딴 ‘버핏 척도’다. 버핏이 “이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주식 평가 수치”라 불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국내 총생산(GDP)에 대한 상장주 가치 총액의 비율인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식은 과대 평가돼 있다. 지난 100년간 이 수치는 30%에서 150%를 오르내렸는데 지난 2월 미 주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을 때는 150%에 달했다. 과거 이 수치가 이처럼 높았던 것은 하이텍 버블이 터진 2000년뿐이다.

그러나 주식이 이처럼 과대 평가돼 있다 하더라도 언제 하락세로 바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장된 것은 항상 더 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하락 위험은 커지고 향후 수익률은 낮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버핏조차 언제가 최고치인가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곰 장’에 들어선 지금 미 상장 주식 총액은 23조 달러로 미 GDP의 115% 수준이다. 아직도 과대평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6일 다우의 13% 폭락은 투자가들의 패닉 상태를 보여준다. 이런 극심한 공포는 종종 바닥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금융위기 이전 2007년 10월 1만4,000대를 기록한 다우가 바닥을 치는데 1년 5개월이 걸렸고 낙폭은 50%가 넘었다. 그리고는 그 후 11년 동안 4배 상승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수익을 올린 사람은 거의 없다. 주가가 바닥일 때 세상은 가장 어둡기 때문이다.

정점을 치면 내리고 바닥을 치면 오르는 것이 세상의 근본 원리다. 냉정한 투자가에게 향후 수개월은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드문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 될 때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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