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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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몸은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2020-03-10 (화)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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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당에 있을 때는 보통 저녁 미사 끝나고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이면 다 일이 끝난다. 밤늦게까지 있는 것도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안된다. 그런데 한국성당에 와서 사목을 하고 보니 정말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성당에 단체가 얼마나 많은가? 구역회를 다 돌려고 하면 한달 내내 매일 밤 나가야 겨우 돌까 말까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모이면 푸짐한 음식과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술 한잔도 어딜 가나 공통된 점이다. 그리고 오랫만에 신부가 왔다고 여기 저기 한잔씩 받는 것도 공통된 점이다. 그러다 보면 밤 12시 넘어 사제관에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이고 신부가 술먹고 운전하지 않도록 항상 차까지 태워 보내 준다. 그렇게 한국성당에서 사목한지 이제 8년으로 접어든다.

처음에는 사목의 열정으로 열심히 돌아다녔고 가면 할 이야기도 많고 반갑고 재미있고 해서 밤마다 밤늦게 돌아오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리고 술만 보면 몸을 못 추스리는 나로서 그리고 술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나만 오면 좋다는 술은 다 꺼내 놓고 술꾼들이 일찍부터 내 주변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같이 먹고 마시고 웃고 재미있는 것이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겸연쩍게 웃으면서 이것은 술 사목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초창기의 사목은 어딜 가나 먹고 마시는데 집중된 사목이 아니었나 싶었다.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보통 170을 유지하던 내 체중이 180 파운드를 훨씬 넘어 190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건강검진 때 혈압이 높다 콜레스테롤이 높다 지방간이 있다 하고 갑자기 이리 저리 의사 선생님의 주의 사항이 늘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젊은데 하면서 별로 심각하게 듣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모든 생각을 바꾸어 놓은 일이 생겼다.


역시 어느 날 구역회를 마치고 또 밤늦은 시간에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자매님들이 이것 저것 내 앞으로 잔뜩 갖고 오신다. 신부님 오신다고 준비했다고 그리고 자꾸만 더 드시라고 앞으로 밀어 낸다. 신부를 이렇게 위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 하면서 기분좋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같이 앉아 있던 평소부터 잘 알고 있었던 형제도 내 옆에서 같이 먹으려니까 그 옆에 있던 부인이 남편의 손을 탁 친다. 그러면서 당신은 먹으면 안돼 이 시간에! 그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듣다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그러면 신부 보고는 밤늦도록 이것 저것 자꾸만 먹으라고 들이밀면서 남편이 좀 먹으려니깐 못 먹게 한다면 그러면 신부는 먹고 죽으라는 소리밖에 아닌가?

그래서 내가 모시던 한인 사목을 30년을 넘게 하신 몬시뇰의 말씀이 ' 신부 몸은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라고 농담반 진담반 하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사실인 것 같다. 내몸은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누가 먹고 마시라고 머리에 총을 들이된 것이 아닌데 바로 내가 먹고 마신 것이 아닌가 결국 내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이 먹고 마시면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술 중에 한 말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나에게 그리고 사목에 불리한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먹고 마시는 술 사목은 성공하질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훨씬 후에야 참 어렵게 깨달았다.

웃고 떠들고 재미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으로는 사목이 되지 않는다 라는 당연한 결론을 바보같이 지금에야 깨달았다. 이제는 성서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목으로 촛점을 바꾸어야겠다. 신부 생활 10년 만에 이 사실을 깨달았으니 나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조민현 요셉 신부/팰팍 마이클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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