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이 돌멩이’를 집어 들자

2020-02-2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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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미국헌법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헌법만 봐도 제1조 제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국민들이 과연 나라의 주인으로서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1세기 들어서도 공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들을 억압하거나 괴롭히는 사례들은 수도 없이 터져 나온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섬기겠다며 말로는 떠들어대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과 국가, 또 유권자들과 정치인들 간의 관계가 이처럼 전도되고 있는 현상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유래되고 있다. 대표를 뽑아 국민들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하고, 그 정치를 통해 국민의 민생과 복리를 극대화하는 국가정책을 실현하는 절차와 과정에 심각한 오작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 무한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국가와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양극화는 돈과 힘이 있는 세력의 영향력이 비대칭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서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미디어조차 점차 이들 밑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들 사이의 종속관계와 검은 유착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스캔들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유착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합리화하면서, 이런 불합리를 해소하려는 시도와 노력들을 좌절시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아주 잘 먹히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거론할 만큼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투표율이 바로 그 증거다.

한국과 미국의 투표율은 평균적으로 50% 내외다. 하지만 평균적이란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세대별, 계층별로 투표율에 아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훨씬 투표에 적극적이고 못사는 사람들보다 잘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이 더 높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사회경제적 격차는 더욱 확고한 정당성을 얻어 나간다.

무관심과 외면으로는 내 권리를 지킬 수 없다. 부조리를 정당화시켜주는 메커니즘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뿐이다. 국민들이 이런 뜻을 분명한 태도로 보여줄 때 비로소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다.

다음 달부터 정치적 일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국민들이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이다. 3월 초에는 캘리포니아 예비선거가 실시되고 4월에는 한국총선이 있다. 이어 11월 까지 숨 가쁜 대선 레이스가 펼쳐진다.

이 과정이 지닌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 총선은 단순한 국회의원 선거를 넘어 향후 대한민국의 10년 20년 정치지형을 가늠할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가 걸린 미국의 대선 결과 또한 이민자들인 우리 삶의 많은 면모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4월 총선 유권자 등록을 마친 한국국적 한인들이라면 빠짐없이 표를 던져주길 당부한다. 비록 지역구 의원은 뽑을 수 없지만 정당투표를 통해 나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정당투표는 의석수 분배에 반영되는 만큼 ‘죽은 표’가 되는 일은 결코 없다.


흔히들 투표를 ‘종이 돌멩이’에 비유하곤 한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향해 집어들 수 있는 준엄한 심판의 도구라는 의미다. ‘종이 돌멩이’ 앞에서 정치인들은 긴장하게 돼 있다.

한국 근대사에 천착해온 소설가 조정래는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흔히 플라톤의 말로 알려진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명언 또한 진짜 플라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닐지라도 거기에 담긴 의미는 훼손되지 않는다.

한 표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다. 인종도 계급도 성별도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무력감을 떨쳐버리는 각성이 중요할 뿐이다. 모두가 ‘종이 돌멩이’를 집어들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바꾸어가는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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