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

2020-02-25 (화)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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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80대 한인들이 많이 사는 노인아파트마다 인기 있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운전하는 남성이다. 나이 들어 운전대를 놓은 사람이 많다보니 자기 차로 운전해 다니는 사람들은 인기가 높다. 어디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니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남성이 인기가 있는 것은 희소가치 덕분이다. 고령으로 갈수록 남성은 적다. 교회에 가도, 노인복지회관에 가도, 양로보건센터에 가도 할머니들은 많은데 할아버지들은 적다. 그러니 사별하고 혼자 사는 점잖은 신사가 운전까지 하면 인기는 떼놓은 당상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오래 사는 것은 전 세계 200여 국가에서 거의 보편적이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인구 중 남성은 49%, 여성은 51%로 여성이 약간 많다. 하지만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여성은 57%로 뛰어오른다. 이후 고령이 될수록 남녀 숫자는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80세 이상이 되면 여성 두명에 남성 한명 꼴, 100세 이상 인구에서는 81%가 여성이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는 학계의 오랜 관심 사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6~8세를 더 산다. 미국에서는 남성 평균 76세, 여성은 81세를 산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전쟁터나 갱단 총격사건, 자동차 사고 등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케이스들이 많으니 그것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나 행동에 빠져들 개연성이 남녀 간 별 차이가 없는 노년이 되어서도 왜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사는 것일까. 그 한가지 설명이 될 수 있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사망률이다. 똑같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남성의 사망률이 높다.

지난주 중국 질병통제예방 당국은 이번 코로나19 감염케이스에 대한 가장 포괄적 분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감염환자 숫자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지만 사망률은 남성 2.8%, 여성 1,7%로 남성사망자가 많다.

남성에 불리한 이같은 현상은 사스(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비슷했다. 2003년 홍콩에서 사스감염 케이스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지만 사망률은 남성이 50%나 높았다. 사망률이 특히 높았던 메르스 환자 중 남성은 32%가 사망한 반면 여성 사망률은 25.8%였다. 여성의 면역시스템이 더 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강한 면역시스템과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꼽는다. 필시 종의 존속을 위해서 여성은 면역력이 강하게 만들어졌다. 아기를 태중에서 키우고 젖을 먹여 키우며 어린 아기에게 면역력을 나눠주려면 여성은 면역시스템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 자연의 판단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젠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면역관련 유전자를 포함한 X염색체를 여성(XX)은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남성(XY)은 물론 하나. 위험한 행동이나 폭력을 부추기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웬일인지 면역기능을 저하시킨다. 한국의 연구진은 81명 환관들의 건강기록을 분석, 남성호르몬이 생성되지 않는 이들은 일반 남성들에 비해 14~18년을 더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아울러 남성은 여성에 비해 흡연, 음주가 많고, 건강수칙을 잘 지키지 않으며 웬만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 등의 라이프스타일이 평생 이어지면서 수명을 깎아먹는 것으로 분석된다. 타고난 유전자와 성호르몬은 어쩔 수 없지만 오래 살려면, 오래 운전하면서 인기남이 되려면 남성들은 건강한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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