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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치하의 무역적자 확대는 “좋은 일”

2020-02-24 (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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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가 내세울 구호는 간단명료하다 - 우리의 귀에 익숙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다. 미국경제는 그가 주장하는 “사상최고”와는 거리가 멀지만 양호한 상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호 출범 이후 미국경제는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비해 약간 높은 2.5%의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빌 클린턴과 로널드 레이건 시절의 성장률에는 미치지 못한다. 트럼프는 입이 닳도록 4%의 고속성장을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탁월한 세일즈맨인 그는 “내가 한 공약을 모두 지켰다”는 거짓 주장을 입에 걸고 다닌다.

사실, 트럼프가 확실히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목은 그가 자랑스레 내세우는 이념과 대중적 지지의 핵심에 닿아있다; 바로 무역적자다. 트럼프는 대규모 무역적자가 미국경제를 망가뜨렸다는 개념에 바탕해 치열한 유세를 펼쳤다.(미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무역 역조 상태다.) 2016년 6월의 한 대선유세에서 그는 자신이 당선될 경우 유권자들은 미국 역사상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무역적자 감소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현실은 달랐다. 트럼프정부 출범이후 무역적자는 오히려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16년 5,003억 달러였던 무역적자는 2018년에는 6,280억 달러로 치솟았다. 무려 25%에 달하는 증가폭이다. (2019년의 무역적자는 그보다 약간 낮아진 6,170억 달러였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는 이번 달 필자와 가진 CNN 인터뷰에서 무역적자가 미국경제를 해친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옳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치하에서 무역적자가 치솟은 이유를 묻자 “그건 경제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장률은 세계 평균치보다 높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옳은 얘기다. 역사적인 데이터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이 활발한 성장을 거듭했던 지난 30년 동안, 무역적자는 상승세를 보였다. 만약 무역적자를 확실히 끌어내리고 싶다면 경기침체를 촉발시키면 된다. 실제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사상최대 폭으로 줄어든 시기는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기 전인 2009년이었다.

무역정책은 대단히 난해하기 때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제학자인 로저 마틴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통해 밝힌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근거로 쉽게 풀어볼까 한다. 인구수는 지구촌 전체 주민의 5%미만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국내총생산량(global GDP)의 20% 이상을 창출하는 국가를 상상해 보라. 이 나라는 해외에 내다파는 상품보다 훨씬 많은 재화를 사들이지만 미래 산업으로 통하는 서비스와 테크놀로지 분야의 선두주자다. 또한 민간투자를 보호하는 훌륭한 법체계와 강력하고 안정된 통화를 갖고 있다. 만약 당신이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면, 이런 나라에 투자하고 싶지 않을까? 이 가상의 국가는 물론 미국이다. 타국의 국민들은 미국 상품을 많이 구입하지 않을지 몰라도 미국의 서비스를 앞 다투어 사들이고, 그들의 자본을 경쟁적으로 미국에 투자한다.

사실 미국은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과의 제조업 상품 교역에서 거의 대부분 적자를 기록 중이지만, (금융, 보험, 컨설팅 등) 서비스 분야에서 막대한 흑자를 내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일자리 가운데 80%가 서비스 분야에 몰려 있다는 점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반면 지난 70년간, 미국 전체 일자리 가운데 제조업분야의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본 투자처다. 마틴이 지적하듯 이 같은 전체 그림을 본다면 “무역적자는 비방하기보다 여기저기 떠벌려야 할 자랑거리다.”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쿠슈너는 “만약 무역적자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상대하는 국가들 모두가 하나같이 적자를 원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실 쿠슈너는 그 질문을 자신의 친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에게 던져야 한다.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오일을 사들이는 덕분에 사우디는 늘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다양성을 이루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우디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경제개혁이 대대적인 성과를 이루기 위해선 다른 무엇보다 무역적자를 내야 한다는 신호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무역흑자를 기록 중인 국가들은 더 많은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서비스 판매를 대폭 늘리고 싶어 한다.

‘무역은 욕설이 아니다’(Trade is Not a Four-Letter Word)라는 책을 써낸 프레드 호흐버그 전 미국수출입은행 총재는 “글로벌 부품공급체인으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단 한 국가가 독립적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무역적자는 이미 낡은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국내산 자동차에 사용되는 미국과 캐나다 부품의 비중이 최고 75% 미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혼다 오디세이(Odyssey)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실제로 국산 부품 사용률이 가장 높은 미국 내 11개 차종은 모두 혼다에 의해 만들어진다. 12위는 메르세데스-벤츠 C300이다.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수입품에 부과된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미국인 소비자들이 부담하게끔 강요했고, 국고에서 수백억 달러를 빼내 중국의 보복관세로 인해 농민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게 만드는 등 값비싼 대가를 요구했으며, 잇따라 나온 관세와 강화된 무역장벽으로 글로벌 교역체계를 현저히 약화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문제될 게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헛된 시도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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