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의 대 파란은 윌 로저스의 오랜 명언이 적절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조직화된 정당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민주당원이거든요.”
실제로 민주당은 남부 분리주의자들과 근로계층 노동조합원들, 그리고 북부의 진보주의자들까지 한데 끌어안은 품 넓은 연합체였고, 바로 이 점이 선거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요즈음의 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이념적 다양성이 다소 떨어지는 연합체이긴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당을 하나로 묶고 유권자들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이오와에서 들려온 가장 염려스런 소식은 민주당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2008년 수준을 한참 밑돈다는 점이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는 기록적인 숫자의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냈다. 그러나 올해 민주당 유권자의 대선후보 경선 참여율은 실망스러웠던 2016년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민주당은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민주당 유권자들을 하나로 묶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오와서 나온 결과는 부정적 에너지만으로는 당과 지지자들을 결속시키기에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이와 대조적으로 공화당계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현직 대통령이 후보로 나선 역대 경선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게 공화당 아이오와 지부의 주장이다.)
아이오와 민주당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피트 부티지지는 작년 11월 남성패션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0년의 대선결과를 살펴보면 기성 정치판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세대의 젊은 기수가 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민주당은 예외 없이 백악관을 수중에 넣었으나 오랜 정치경력을 지닌 기성 정치인을 후보로 지명했을 때는 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럴듯한 결론이다. 그의 말대로 중앙정치 무대의 붙박이 정치인과는 거리가 먼 지미 카터, 빌 클린턴과 오바마는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휴버트 험프리, 조지 맥거번, 월터 먼데일, 앨 고어, 존 케리와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에 패했다. (워싱턴 정가의 국외자였던 마이클 듀카키스의 패배는 이것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같은 패턴 역시 민주당에 관한 특별한 무언가를 일러준다. “민주당은 사랑을 따르고, 공화당은 규칙을 따른다”는 말대로 공화당은 승리를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기강이 잡힌 조직이다.
거의 모든 예비주자들이 도널드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웠던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린지 그레이엄 연방 상원의원은 “만일 그가 최종 후보지명을 받는다면 당을 망가뜨리고 말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일단 트럼프가 후보지명을 받자 당은 일사불란하게 그의 뒤를 받쳐주었다. 공화당 유권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94%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유권자들은 사랑에 빠질 후보를 필요로 한다. 그들이 무리를 지어 투표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활기를 불어넣어줄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새로운 세대, 혹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개혁적인 인물이어야 한다.
부티지지가 지닌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아니라, 그의 출마가 젊고 다양한 유권자들보다 나이든 백인계 지지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젊은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후보는 여전히 버니 샌더스다. 샌더스 역시 명백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미국은 아직 그처럼 좌경화된 인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가 새로운 물결을 대표한다거나, 젊은이들이 그의 아이디어에 마음을 열고 있으며 한때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극좌적 아이디어가 지금은 주류의 담론 중 한 부분을 이루는 신세계가 열렸다는 따위의 주장은 분명 매혹적이다.
하지만 지난 12월에 열린 영국 총선에서 이와 동일한 주장을 펼쳤던 제레미 코반 노동당 당수와 그의 지지자들은 1935년 이래 최악의 패배를 맛보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 사회당 후보로 나섰던 브누아 아몽은 유권자들로부터 고작 6%의 지지를 받는데 그쳤다.
뉴욕타임스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안나 사우어브레이는 “서유럽 국가들 전반에 걸쳐, 사회민주당 계열의 정당들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체 투표수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했지만 최근 몇 년은 5분의 1을 가져가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좌파의 선거 부진을 풀이하는 설명은 차고 넘친다. 그 중 하나는 근로계층 유권자들로 구성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현저히 약화됐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상당수에 달하는 유럽의 젊은 유권자들이 사회민주당 대신 녹색당을 택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오늘날 가장 첨예한 이슈가 주로 이민에 초점을 맞춘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 좌파를 넘어뜨리는 최대 걸림돌이다. 지구촌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급진적인 좌익의 해법을 포용하지 않고 있다. 불확실성과 변화의 시대에 그들은 경제적 좌경화가 아닌 문화적 우경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익 대중주의(left-wing populism)는 거의 언제나 좌익 대중주의(left-wing populism)를 꺾는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을 거둔 자들은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처럼 중도층에 호소하는, 참신하고 진정성 있는 정치인들이다.
그러나 좌익정당이 - 종종 연정의 형태로 - 집권한 다른 국가들의 예는 복잡하고 수시로 변하는 정치지형으로부터 확실한 교훈이나 룰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분명한 교훈이 하나 있긴 하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을 활성화시키고 당내 좌파와 중도파를 결속시키는 대선후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민주당 예비주자들 가운데 그 일을 할 만한 후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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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