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출간 예정인 존 볼턴 회고록의 유출된 내용은 탄핵과정에서 터져 나온 숱한 폭로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전·현직 관리들의 거듭된 폭로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트럼프 탄핵 지지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지지율 수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이런 패턴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정점에 도달했던 즈음,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원하는 유권자들의 비율은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미국인들의 비율과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 리처드 닉슨이 사임하기 직전, 민주당계 유권자들의 71%가 그의 축출을 지지했던 것에 비해 현재 민주당계 전체 유권자들의 89%가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쫓아내길 원한다. 당시 무당파 유권자들의 55%가 닉슨의 제거를 원했던 반면 지금은 소속 정당이 없는 유권자들 중 48%가 트럼프 축출을 지지한다. 수치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가장 큰 변화는 공화당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 1974년 8월, 공화당 지지자들 중 31%가 닉슨이 탄핵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공화당계 유권자들의 8%만이 트럼프 퇴출에 찬성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탄핵 담론은 오늘날 미국정치의 양극화에 관한 담론이기도 하다. 양극화는 미국 정치판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많은 학자들이 수십 가지의 역사적이며 실험적인 접근법을 통해 여러 다른 각도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누군가 이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하고, 합성해 우리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역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진보성향의 시사매체 복스(Vox.com)의 편집장인 에즈라 클라인이 ‘우리가 양극화된 이유(Why We‘re Polarized)’라는 제목의 새로운 저서를 내놓으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책은 올해 최고의 정치서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인의 책은 정치 양극화가 사실상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미국인들은 오랜 시간 분열되어 있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과 북부의 진보주의자들, 순수한 자유시장주의자들과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옹호론자들 사이의 정책적 차이는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 간의 견해 차이보다 컸다.
그러나 그 당시 각 당은 그 안에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담고 있었기에 협상을 통해 정책 차이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은 상원에서의 당의 입지가 남부지역에 기반을 둔 당내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이념적 편향성을 드러낼 수 없었다.
민주당이 분리주의자들과 결별한 1964년 이후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분류됐고 정책 차이는 무기로 둔갑했다. (민주당과 분리주의자들의 결별은 좋은 일이었다.)
정치 양극화를 대대적으로 악화시킨 최대 요인은 오늘날 당파성의 기준이 정책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정체성 자체는 인구통계학적 요소, 특히 오바마 시절 이후에는 점차 인종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클라인이 참고한 서적들 가운데 하나인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의 공동저자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 “1992년부터 2008년까지 퓨 리서치 센터가 실시한 조사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은 백인들 중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거의 반반으로 균등하게 나뉘었다. 그러나 2015년에 이르면 고교졸업 이하의 학력을 지닌 백인유권자들의 비율은 민주당에 비해 공화당 쪽에서 24% 포인트나 높게 나왔다.”
클라인에 따르면 일단 정체성이 정치적 차이의 중앙에 자리 잡게 되면 유권자들의 마음은 ‘사실(facts)’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다. 예컨대 부족충성심(tribal loyalty)을 좇아 지지 정당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깊은 소속감은 상대 정당이 더 나은 의료보험을 제안했다 해서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으로서는 특히 이 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여는 열쇠는 그들의 경제적 관심사보다 정체성 관련된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데 있다. 빌 클린턴과 같은 과거의 민주당 인사들은 이런 종류의 상징 정치(symbolic politics)의 달인이었다.
부족충성심을 이해하려면 먼저 부정적 양극화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클라인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긍정적 견해보다 반대당의 부정적 견해가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와 기부를 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임을 보여주는 몇 건의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그는 2018년 상원선거에서 현역인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의원과 맞대결을 펼치면서 수퍼스타 반열에 오른 텍사스 출신의 베토 오루크 전 민주당 하원의원을 예로 꼽는다. 오루크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지만 크루즈에 대한 반대처럼 캠페인에 동력을 제공할 부정적 자극제를 갖고 있지 않았기에 제대로 조명조차 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미국의 정치지형 탓에 양극화는 두 정당에 서로 다르게 영향을 준다고 클라인은 주장한다. 백인남성이 중심이 된 공화당은 민주당보다 균일한 동종집단으로, 미국의 선거제도를 감안하면 엄청난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공화당은 지난 다섯 차례의 대선에서 네 번이나 전체 득표수에서 민주당에 뒤졌으면서도 그 중 두 번에 걸쳐 백악관을 차지했다.
내륙지역의 선거인단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훨씬 폭넓은 유권자들의 연합세력에 호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클라인의 책은 강력하고, 지적인 동시에 우울하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다수당이 모든 정부기관을 장악해 원하는 아젠다를 추구할 수 있는 의회제가 아니다. 국가권력은 일부 권한이 서로 겹치는 3개 부에 의해 분점 된다.
복수 정당이라는 개념을 마땅치 않아했던 건국의 시조들에게 의회제는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벌이는 파벌들을 떠올리게 했다.
건국 시조들이 구상한 틀 안에서 어떤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의사 절충과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현재의 정책 양극화가 미국정부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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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