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살다 보면 매년 한국 방문하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지난 연말 4년 만에 한국을 다녀온 것이 마치 큰일이라도 되는 양 자꾸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한다.
한국에 다녀온 뒤로 생체리듬도 바뀌었고, 두 번의 검사관련 단식을 하느라 아침 6시 반이면 도착해 하루를 시작하던 짐에 근 한달 째 30~40분 늦게 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약간 늦은 시간대에 오는 친구들을 보는 반면, 늘 같은 시간대에 보던 친구들을 못 보게 된 나는 마치 그들이 다른 곳으로 이사라도 간 듯 잠시 착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침대 위에 누워 ‘5분만 더..’ 하면서 실눈 뜨고 밤새 무슨 재밌는 일이 있었는지 스마트폰을 서핑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재미가 얼마나 달콤한가 말이다.
그러다 오늘은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박차고 일어나 예전의 이른 시간대에 도착해 샤워를 마치고 언제나 처럼 풀사이드 핫텁으로 향했다. 근 달포 만에 본 제니가 수영을 서둘러 마치고 핫텁으로 따라 들어온다.
“그동안 어디 갔었어?” 서로 동시에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베이징 출신의 의학박사인 제니가 먼저 근황을 털어 놓는다. 25년간 근무하던 팔로알토 소재 VA 병원의 리서치 닥터 일을 작년 말에 그만두고, 자신의 신약개발 스타트 업에 올 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가지 일을 하느라 심신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홀가분하게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나보다 두세 살 밑인 제니는 30여년 전 중국 국비유학생으로 도미하여 이곳에 정착한, 중국 명문대학 출신의 인재이다. 제니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베이징 의과대학, 칭화대학, 북경대학, 푸단대학(상해 복단대학)이 4대 명문대학이다. 그녀는 베이징 의과대학 출신으로 국비유학생 선발시험 때 북경대학 출신의 남편을 만나 함께 미국으로 유학 왔다고 한다.
인생은 끝없는 걱정과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라는 제니는 그동안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풀타임 직장을 그만두고 자기사업에 전념하니 이제는 모든 걸 홀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잘 감당해 나갈 자신감이 들면서 삶에도 활기가 돈다고 한다. 다음 달에는 뉴욕으로 가 JP 모건 계열의 투자은행 사람들을 만나 투자유치를 협의하기로 돼 있다고 한다.
제니가 “그동안 어디에서 뭘 하느라 숨어 지냈느냐”고 물어보니 어쩔 수 없이 한국에 갔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또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 60세 생일파티를 절친 클라이언트가 운영하는 팔로알토의 일식당에서 아주 재미있게 가졌다고 하니 자기는 왜 안 불렀냐며 서운한 표정을 지어 조금 미안해졌다.
생일파티엔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법인에 근무하는 큰아들, CPA인 작은 아들이 와서 열심히 서빙을 해주었다. 한동안 서먹하던 큰아들은 멋쩍은 미소를 띠며 와서는 생일축하 케익에 촛불도 붙여주고 최선을 다해 하객들과 어울리며 애를 써주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후 잔치비용에 보태라며 큰 금액의 체크도 슬쩍 내게 쥐어 준 정말 멋진 아들이다.
할리웃에서 3명의 유태인 파트너가 운영하는 전국구 부동산 개발회사에 근무하는 작은 아들은 내 생애 처음 받아보는 명품 브랜드 넥타이를 선물로 먼저 보냈다. 일이 바빠 참석하지 못할 거 같아 선물만 보낸다기에 환갑이란 인생에 몇 번 안 되는 큰 행사라고 하니 두말없이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
두 아들은 40여명의 아빠의 절친 하객들을 정성껏 시중들고 환담을 하면서 많은 수고를 해 주었다. 작은 아들은 야근을 해야 한다며 중간에 하객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한 뒤 공항으로 달려갔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흐뭇했다.
대학 동창회 하객 중 제일 윗어른인 조 선배님이 팔로알토의 나의 절친 미국 친구들에게 축사를 건넨 후 건배를 제의하면서 잘 자라준 내 아이들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두 아들에게 슬쩍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척 하다가 뺨에 기습 뽀뽀를 해주었다.
쪽! 자랑스런 내 아들들, 정말 사랑해! 아빠의 생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함께한 두 아들의 얼굴에도 행복한 표정이 은물결로 잔잔히 퍼져 나갔다.
기쁨에 겨운 환갑의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니 외국인 친구들은 어리둥절 어깨춤으로 환호하고 한인들은 합창을 한다.
“해~ 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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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실리콘밸리 부동산업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