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레이커스 선수로 20년 동안 코트를 누비며 NBA 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의 하나로 평가받았던 불세출의 수퍼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일요일인 26일 아침 헬기 추락사고로 숨졌다는 믿기지 않는 비보는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가 41세의 젊은 나이에 참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스포츠계와 전 세계 팬들은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코비는 고교를 졸업하던 1996년 17세 나이로 샬럿 호네츠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후 곧바로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돼 2016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을 줄곧 한 팀에서 뛰었다. 그는 슈팅가드로서는 NBA 사상 처음으로 한 팀에서 20시즌을 뛴 선수로 기록되고 있다. LA 스포츠를 대표하는 단 한명의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코비 브라이언트다.
그가 선수로서 남긴 기록은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가 뛰는 동안 레이커스는 5차례나 NBA 정상에 올랐으며 개인적으로는 18차례 올스타 선정과 두 차례 플레이오프 MVP, 2008년 정규시즌 MVP, 그리고 NBA 사상 4위에 해당하는 통산 3만3,643 득점 등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를 보며 많은 어린 선수들은 미래의 꿈을 키웠으며 팬들은 그의 화려하면서도 역동적인 플레이에 즐거움과 삶의 활력을 맛볼 수 있었다.
이처럼 농구선수로서 코비는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기량을 보였지만 그가 인간적으로도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혈기 넘치던 시절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지나친 승부욕과 이기적인 플레이 때문에 동료선수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했다.
2008년 NBA 올스타로 선정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당신 팀메이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선수 중 누가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녔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더니 무려 7명이 코비를 꼽았다. 뒤이어 던진 “그럼 누구와 같은 팀에서 뛰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코비를 지목한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NBA 올스타들이 최고의 기량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같이 뛰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선수가 코비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의 리더십과 성격은 조금씩 변화해 나간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애쓰고 동료들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리더로 바뀌었다. 코비는 한 인터뷰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관점이 넓어지고 어떻게 해야 더 잘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한 절친은 코비의 별명을 ‘블랙 맘바’가 아닌 ‘비노’(Vino)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노는 와인이다. 세월이 갈수록 더 성숙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커리어 후반 코비의 기량은 쇠퇴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 그는 성장했다. 더 뛸 수 있었음에도 그는 37세에 코트를 떠났다. 그리고는 좋은 남편과 아빠로 가정에 충실하면서 여성스포츠의 지위 향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앞장서왔다. 또 책과 영화대본, 심지어 시까지 쓰며 다음 세대에 영감을 안겨주길 원했다. 한시도 쉬지 않는 그에게 “은퇴생활을 조금 즐기라”고 권유하면 웃음과 함께 “No way”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많은 실수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씩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그렇게 변화했다. 코비가 남긴 유산은 코트 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육체의 성장은 어느 순간 멈추면서 퇴화의 과정에 들어서지만 인간으로서의 성장에는 시간적 한계와 제한이 없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젊고 강했다. 명성과 돈을 모두 거머쥔, 모든 이들의 선망을 받는 수퍼스타였다. 마치 불멸의 기운이 에워싸고 있는 것 같은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한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믿기지 않는다. 천둥소리 같은 울림과 충격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깨우쳐 준다. “생명은 주머니 속 유리잔 같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스토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명은 유한할 뿐 아니라 유리잔처럼 깨지기 쉬운 것임을 코비의 짧지만 불꽃같았던 삶은 일깨워준다. 코비가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남기고 간 가장 소중한 유산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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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