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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의 정상화와 끝장난 세계화

2020-01-27 (월)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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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에서 트럼프의 연설은 제법 호응을 얻었다. 다보스가 기업인들의 회합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기업친화적인 메시지가 먹혔다는 게 부분적인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다보스 포럼 참가자들의 긍정적 반응은 트럼프와 그가 대표하는 가치가 더 이상 상도를 벗어나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트럼프와 트럼프주의는 이미 정상화됐다.

한때 다보스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그들이 속한 경제와 사회의 개방을 약속하는 자리였다. 결국, 이들 개방주의자들이 글로벌 성장을 주도했고, 수 천만 명을 빈곤에서 건져냈다. 해마다 신흥국가와, 해당국의 경제 붐을 설계한 장본인 격인 재무장관이 다보스 포럼의 스타로 떠오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미국 역시 경제개방과 정치적 자유라는 쌍둥이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오늘날 다보스의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다. 범세계적으로 견고한 성장기조가 유지되고 있고, 대다수의 국가들이 전진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음색은 바뀌었다.

한때 다보스의 주된 토픽이었던 세계화는 포퓰리스트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미래에 대한 견고한 확신 역시 불확실성과 불안감에 자리를 내주었다. 단순히 분위기와 수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운용회사인 모건스탠리의 신흥시장 부문 총괄사장으로 활동 중인 루치르 샤르마가 지적하듯 2008년 이후 우리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1970년대 이후 거침없는 성장을 거듭해온 세계 무역이 정체됐고, 자본흐름은 둔화됐으며 빈곤국들로부터 부유한 국가들로 이동한 이민자들의 수도 줄어들었다. 2018년 미국으로 이주한 순 이민인구(net migration)는 10년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

이처럼 변화된 접근법은 인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 2018년 다보스 포럼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많은 국가들이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서면서 세계화 추세가 위축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그 이후 인도 정부는 수백 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늘리고 인도의 농부들과 상인들, 디지털 기업들 및 기타 업체들을 국제경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연이어 취했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는 세계 주요 경제국들 가운데 인도가 가장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과거 인도 관리들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데 필요한 외국자본을 공격적으로 유치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주 제프 베조스는 심한 경제 둔화세를 보이는 인도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소유주다.) 이에 대해 인도의 상공부 장관은 아마존이 인도에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착취에 해당하는 반경쟁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베조스의 제안을 매도했다.


사실 보호주의 정책은 종종 국내 생산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말레이시아 총리인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자국의 이슬람 주민들을 겨냥한 모디의 일부 정책을 맹렬히 비난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말레이시아산 야자유 수입을 사실상 차단했는데 이로 인해 이득을 챙긴 주요 수혜집단 중 하나가 오래 전부터 모디와 인연을 맺어온 인도의 억만장자들이다.

경제학자들은 한때 경제와 정치의 개방을 견인한 주요 동력원 가운데 하나였던 유럽마저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인식의 변화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만약 인터넷이 이같은 일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는다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디지털 경제를 ‘현지화’하기 위해 64개국들이 취한 보호주의 조치들을 추적한 유럽 국제정치경제센터(ECIPE)는 특히 2008년 이후 이 수치가 급속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물론 세계화에 대한 반 기류를 과장해선 안 된다. DHL이 2019년도 보고서에서 밝혔듯, 세계화 추세는 여전히 강력하고, 어떤 면에서는 확대를 거듭하고 있다.

지구촌 주민들은 자유로운 교역과 여행 및 거래를 원한다. 하지만 정치적 논리보다 경제적 논리를 우선시했던 정부정책들이 수시로 뒤집어지고 있다.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선도 업체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며 이민을 제한하는 조치들의 누적된 결과가 성장저해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필자에게 “보호주의 정책과 이민제한은 성장둔화, 일자리 감소와 경제 효율성 하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과거에 이같은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예컨대 인도는 보호주의 정책의 결과로 인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스테그네이션에 시달렸고, 앞으로도 수 년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민족주의와 보호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 단계에서 탈세계화는 위에서 아래로 진행된다. 평소와 다름없이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지도국들의 몫이다.

그중에서도 자국의 일부 시장을 보호하면서 신속한 성장을 이룬 중국의 예는 많은 국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임팩트를 준 본보기는 자유와 개방의 최대 수호자이면서도 정작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관리무역과 이민제한 및 보호주의를 외치는 미국이다.

다보스에서 트럼프는 모든 국가들에게 자신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권했고, 점점 많은 국가들의 그의 말에 복종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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