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자 전망대 ‘거시기와 윤석렬’을 읽고서)
인생을 사는 동안 한 점 부끄럼 없이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윤석렬’이 아닐뿐 아니라 부친이 ‘녹두꽃’ 의 한낱 이방이었던 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분이었다.
이름을 윤석렬로 표기해서, 윤석열을 그 이방의 노비에서 태어난 '거시기' 에다 감히 비교하며 글을 쓴 동기나 목적이 참으로 황당하고 의도가 사뭇 의심스러워 졸필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공언, 일개 범부의 말이 아닌 국가수반이, ”청와대든 정부든 여당이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고 까지 당부 했는데 검찰은 단지 직무에 충실하면서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감행했을 뿐이다.
재언하지만, 윤석열 검찰총장 성함을 '윤석렬'로 표기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여기가 자유분방한 미국이라 할지라도, 한 인격체를 두고 무자비하게 폄훼하는 언동은, 표현의 자유로 허용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더욱 경박스럽고 가관인 것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검찰의 고삐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잡았다.' 라는 망발 까지 불사한 필자의 배후가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현 정권이 시종일관 부단히 고질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검찰개혁'을 앞 뒤 분간 없이, '그 길 만이 국민과 대통령의 바람에 부응하는 오직 한 길' 이라고 갈파하는 정서는 도대체 무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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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원/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