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상]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이

2020-01-07 (화) 12:00:00 박연실 /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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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들른 곳에서 콩나물시루를 보게 되었다. 초록색 플라스틱 통 위에 검은색 시루모양의 통을 얹어 밑으로 물이 빠지게 만들어놓은 ‘콩나물재배기’였다. 타이머가 있어 알아서 물도 준다고 쓰여있다.

어린 시절 콩나물시루에 하루에도 서너번씩 물을 주던 기억이 있다. 햇빛을 피해 검은 베보자기를 씌워 방 한 귀퉁이에 놓아둔 구멍 난 시루 사이로 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붓는 물은 다 흘러내리는데 무슨 영양분으로 콩나물이 그리 쉽게 자라는지 궁금했다. 콩나물은 신기하게도 자고나면 쑥쑥 자라있었고 일주일이면 먹을 수 있었다.

영어공부도 책을 덮으면 몇 시간의 공이 허사로 돌아간다. 콩나물시루에 물 흘러내리듯이 주루루 흘러내리고 만다. 책을 읽다보면 눈에 익은 단어도 또 다시 반복해서 찾게 된다.


영어공부도 이러한데 하물며 삶의 여정에서 흘려버리는 것 없이 차곡차곡 쌓을 수만은 없는 듯하다. 한때는 이것이 옳은 길이라 여기고 왔는데 숨가쁘게 달려와 보니 막다른 길에 다다라 있기도 하고 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와버려 망설이게 되기도 했다.

한 방울의 물과 보이지 않는 공기를 먹고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성장을 계속하는 콩나물처럼 지식이나 삶의 통찰 역시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흘러버리는 기억 속에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야만 겨우 내 것이 하나 되었다.

새해에 세우는 여러가지 계획 중에 영어공부는 해마다 빠짐없이 포함되는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꾸준히 실천하기 어려운 계획이고 좀처럼 결과가 눈에 띠게 보이지도 않는 늘 미완의 계획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콩나물시루에 물이 다 흘러내려도 콩나물이 자라있듯 어느 날 훌쩍 자라있는 영어실력과 삶을 꿰뚫어 보는 해탈의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이다.

<박연실 /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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