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엔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미리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 해도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 그 익숙함에서 떠나 낯섦의 설렘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에 어느 정도의 일탈은 기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2019년, 10년의 마지막 해이자 내가 미국에 온 지 20년이 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여행을 준비했다. 큰아이가 8월 말부터 이번 학기를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는 데 그동안 가보지 못해 12월에 둘째 아이가 방학하는 날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큰아이는 기차를 타고 먼저 도착해 스페인 말라가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노라 했다. 그곳에서 온 가족이 몇 달 만에 상봉한 후, 온라인으로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찾아 유럽의 최남단인 타리파로 내려가 그다음 날 타리파 항구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 탕헤르에 가 1일 관광을 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와 안달루시아 지역을 일주일간 돌아다니는 일정이었다.
지난 몇 달간 짬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지며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이고 뜻깊은 여정이 되도록 이 일정을 준비했다. 스페인 남부 말라가까지 직항비행이 없어서 경유 시간을 포함해 최단 시간에 갈 수 있는 것으로 로열 에어 모로코 항공을 택했다. 비행기를 타고 앉으니 미국의 최저가 항공 좌석처럼 좁고 불편한데, 어쩌랴, 다음 날 큰아이를 보리라는 기대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7시간 여를 그렇게 날아 경유지인 카사블랑카에 내릴 때부터 둘째는 불편한 항공기 여행에 심술이 나 성난 복어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말라가에 도착해 큰아이를 만나 반가움에 끌어안고 기뻐한 것은 잠시. 서둘러 차를 찾아 타리파로 가서 저녁을 먹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렌터카 업체가 있다는 건물로 찾아갔는데 남편이 예약한 엔터프라즈사는 없는 게 아닌가. 주변에 물어도 아는 이는 없고 다시 공항 건물 안내센터까지 돌아와 문의하니 엔터프라즈사는 셔틀을 타고 공항 밖으로 나가야 있다고 했다. 셔틀을 타려면 우리가 한참을 걸어갔었던 맞은편 건물 입구에 가야 했다. 렌터카를 찾으니 오후 다섯 시가 지났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타리파로 거의 다 갔어야 할 시간.
“아니, 이 많은 렌터카 회사 중에 왜 하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걸 골랐을까!” 볼멘 내게 남편은 유럽식 수동 기어를 조정하느라 진땀을 빼며 말했다. “누가 알았나? 코스코에 있길래 믿고 선택했지.”
길을 나서니 해가 질 무렵에 짙은 먹구름까지 더해 날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맑고 청명한 스페인 남부 해안을 따라 차를 타고 가며 푸르른 경치를 즐기리란 기대와는 딴판으로 어두침침한 하늘에 비가 흩날리더니 안개가 몰려왔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한계령처럼 구불구불해지고 안개와 어둠은 점점 짙어져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멈추고 설 수 있는 길가의 불빛이라도 있으면... 숨도 제대로 못 내쉬고 순간이 일 년은 되는 듯한 긴장 속에 슬금슬금 나아가다 보니 저만치 불빛이 켜진 크리스마스트리와 커다란 ‘TARIFA’ 사인이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어렵게 시작된 여정은 예기치 못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유적지를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옛 도시 안에 숙박을 잡아 놓아 차로 진입하는 데 애를 먹고, 타리파에서 탕헤르로 가는 배편과 관광은 일기 탓에 취소되고, 세비야에서는 아이들이 늦잠을 자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알카사르 투어도 놓치고, 마지막 돌아오는 날에는 말라가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어 카사블랑카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놓쳤다. 친구들과의 일정이 잡혀있던 아이들은 점화된 시한폭탄이 되고, 짐을 모두 말라가에서 D.C.까지 보낸 탓에 갈아입을 옷도 없이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이곳에 사는 난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미국에 도착해 차를 타고 오며 둘째가 말했다.
지난밤 집에 돌아와 돌이켜보니 탕헤르는 못 갔으나 대신 많은 야생 원숭이들이 있는 지브랄타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모든 난관과 돌발사태에도 서로를 다독이며 무엇이 진정 소중한가를 잃지 않은 귀한 추억을 안고 왔다.
흔히 삶은 여행과 같다 한다. 이제 2020년을 맞이하며, 예상치 못한 많은 일로 때로는 경로를 바꾸어야 할 수도 있고, 속도를 늦추기도 하겠지만 무엇을 얻고 함께 나눌 것인가는 항상 나의 몫임을 기억하며 새로운 한해의 여정을 시작한다.
<
송윤정 금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