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저만치 앞으로 내달린다. 어느덧 세밑인 것이다. 또 다시 맞는 연말. 그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거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한 구세군의 빨간 냄비. 요란한 화장을 끝낸 상가의 쇼 윈도우.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해마다 보는 그 모습이다.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서울 발 뉴스로 전해지는 2019년 12월의 대한민국의 모습도.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한반도 주변으로 속속 몰려든다. 일본에 정박하고 있는 미 항모만 두 척이다. 세 번째 미 항모전단도 곧 합류한다는 소식이다. 미 정찰기가 쉴 새 없이 한반도 상공을 휘젓는 가운데 미국과 북한 간의 말 폭탄은 날로 거칠어간다. 2년 전, 그러니까 ‘화염과 분노’의 2017년. 그 때 그 상황의 판박이다.
무관심이다. 정치가 어찌되든, 미군 정찰기들이 몰려들든. 서울 발 뉴스의 행간, 행간 가운데 느껴지는 것은 바로 철저한 무관심이다. 이 역시 데자 뷔라고 할까.
세계적 석학으로 불리는 국제정치 전문가가 제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그 저 몇 줄짜리 기사로 다루어지고 그만, 무관심 가운데 이내 망각된다. 한국 사회에 편만한(?) 이 무관심은 무언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괜한 호들갑 떨지 말라’고. 정말 호들갑일까. 워싱턴 발로 전해지는 뉴스들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김정은의 북한이 말하는 크리스마스선물은 ICBM(대륙간탄도탄)발사가 될 공산이 크다. 일단 발사되면 이는 한반도를 아주 엄중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이다.” 뉴스위크지의 보도다.
“북한이 뭔가 위기확산을 불러올 도발을 해 올 찬스는 100%라고 본다. 그 도발이 ICBM발사나, 핵실험이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 대대적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해리 카지아니스의 말이다.
이번의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2017년에는 피할 수 있는 길(off-ramp)이 있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다. 그런 우회로가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최대압력정책이 펼쳐질 경우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거다.
무엇이 이런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가. “김정은의 오산이다.” 북한전문가 고든 챙의 지적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내리는 조치(도발)가 트럼프의 재선가도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과대망상적인 판단과 함께 ‘새로운 길’ 운운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판으로 며칠 안 남은 크리스마스를 전후에 오히려 김정은이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수백만의 북한 주민이 희생될 수 있다. 한국의 피해도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2의 한국전쟁은 나쁘지만은 않은 옵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북한의 또 한 차례 도발이 임박한 현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핵전문가 크리스핀 로베르가 토로한 자신의 생각이다. 무엇을 근거로 이 같이 소름끼치는 판단을 내리고 있나.
(미국에 대한)핵 공격무산,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공격에 대한 억지력 발휘, 그리고 핵 확산 저지, 특히 미국의 적성국이나 테러단체에 대한. 로베르가 지목한 미국의 대 북한정책에서의 확고한 3대 목표다.
다른 말로 하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트럼프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레드라인을 넘어서겠다는 협박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레드라인 침투를 허용할 경우 어떤 상황이 오나. 궁극적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 북한은 아시아의 미 동맹국에 대한 낮은 수준의 핵 공격이나, 한반도 무력통일을 꾀할 수도 있다. 그 경우 미국은 대처방안을 상실하고 만다는 거다.
LA나 샌프란시스코가 북한의 핵탄두에 초토화되는 사태를 감수하며 개입해야 하는 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그러니 그 때 보다는 지금이 차라리 군사행동의 적기 일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김정은의 무모한 도발은 제 2의 한국전을 가능한 옵션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발로 전해지는 이 같은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평양 건너로 비쳐지는 대한민국은 무관심도 지나 권태감 속에 무료해 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부터가 그렇다. 미국과 북한의 말싸움이 격렬해져도 오로지 침묵뿐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지 않았다. 대통령은 하릴없이 ‘평화의 전도사’라는 아일랜드 출신 록가수나 접견했을 뿐이다. 가히 태평성대라고 할까.
그래서인가. 트럼프는 북한 도발에 대비한 국제전선 구축의 윤곽을 내비치면서 여기에 의견일치를 본 당사국으로 나토 동맹국과 일본,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까지 거론하면서 북 핵의 최대 피해국이자 직접 당사국인 한국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바깥세상 일에 아주 초연하기는 집권 여당도 마찬가지다. 북이 도발을 하든 말든 오직 관심은 총선승리에, 정권연장밖에 없다. 그래서 급기야 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들은 제 1야당인 한국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일방 처리하기 위해 기습작전을 펼치기까지 한 것.
그 청와대를, 그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침묵만 지키고 있으니.
태평양 건너 멀리보이는 대한민국. 그 모습이 어쩐지 자꾸만 신기루 같이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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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