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화당의 핵심 의제…국가기획과 정실 자본주의

2019-12-09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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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지키기’는 대통령 본인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뜨겁고 치열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진정한 공화당원이 아니며, 보수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게 공화당 내부의 지배적 견해였다.

그러나 지금 공화당원들은 트럼프를 사랑한다.


티파티 패이트리어츠(Tea Party Patriots), 프리덤웍스(FreedomWorks)와 클럽 포 그로스(Club for Growth) 등 순수 보수단체들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수백만 명의 지지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가장 자주 듣는 대답은 트럼프가 공화당의 아젠다를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커스나 연극처럼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표피적 인상의 뒤편에 믿음직하고 강력한 보수주의자의 진면목이 감춰져 있다는 얘기다.

부분적으로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판사임명과 낙태규정 강화 및 이민과 망명 등 주로 사회정책과 문화정책에 국한된 평가에 불과하다.

공화당이 그들의 핵심의제로 꼽는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라는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는 보수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티 파티의 기원이 된 이슈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재정적자였다. 주택소유주들의 담보대출금 탕감 전망이 티 파티 운동을 촉발시켰지만 보다 광범위한 이슈는 위험스런 적자지출이었다.

미국의 통계 전문매체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한 해 동안 의회 의사록에 기록된 적자에 관한 언급은 8,000번을 넘어섰다. 후일 하원의장에 오른 폴 라이언도 2012년의 한 의정연설을 통해 “이번 세대에 정부가 짐 져야 할 명시적 책임은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미국을 부채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기 첫해에 트럼프는 공화당 하원과 상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가며 감세를 단행했고, 이로 말미암아 미국의 올해 예산적자는 1조 달러 선으로 대폭 확대됐으며 향후 10년에 걸쳐 국가채무는 총 2조 달러 이상 늘어나게 된다.


민주당이 집권한 시기에만 적자타령을 늘어놓는 공화당의 위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새로울 게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제한된 정부와 재정적 보수주의의 포기가 확대된 보수주의라는 자체적 리메이크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우파성향의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Tax Foundation)에 따르면 트럼프는 관세의 형태로 88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했다.(관세란 외국상품에 대해 미국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세금이다.)

관세는 국내총생산(GDP)을 축소하고, 미국인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

현 행정부도 정부의 편애를 받는 일부 피해자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나쁜 정책에 또 다른 나쁜 정책으로 응수하는 무역전쟁이 상당한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농부들이지만, 트럼프는 “2018년 그들에게 12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했고, 올해에도 160억 달러를 주었기 때문에 내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농가 지원금의 규모에 비하면 2009년 연방정부가 도산위기에 처한 국내 대형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제공한 120억 달러의 공적자금은 왜소해 보인다.

자유시장의 이념은 아담 스미스와 데이빗 리카르도 등의 핵심주장인 관세와 보호무역주의, 중상주의와 배치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무역의 덕목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무역 이상으로 경제의 승자와 패자를 정부가 가려서는 안 된다는 아이디어를 신봉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공화주의(Republicanism)의 근본사상으로 트럼프 역시 2015년 대선출마 의사를 밝힌 직후 이에 관한 트윗을 날린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총애하는 기업들에게 관세면제 혜택을 제공하는 반면 눈 밖에 난 업체들에게는 이를 제공하지 않는 등 마치 미국의 중앙기획조정실(Central Planning Agency)인양 행동했다.

지금까지 관세대상에서 제외된 상품 가운데에는 연어, 대구, 성경과 새로운 석유채굴법인 수압파쇄에 필요한 화학물질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과세 면제조치는 한시적인 것으로 해당 기업들은 유효기간이 끝날 때마다 재신청을 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예전에 소련에서 흔히 보았듯 로비스트와 변호사, 기업중역들은 과세면제 청원을 위해 정부의 실무관리자 앞에 줄을 선다. 하지만 선정기준은 불투명하고, 때로는 트럼프가 직접 대상 기업을 결정하기도 한다.

트럼프는 애플이 면제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트윗을 남겼지만 애플 총수인 팀 쿡과 만난 후 태도를 바꾸었다.

이런 정실주의(favoritism)는 국가경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아젠더를 실천하기 위해 산업정책에 직접 개입하려는 트럼프의 욕망에 딱 들어맞는다.

2020년 선거를 염두에 둔 그는 재선을 위해 꼭 손에 넣어야 할 격전 예상 주의 업체들과 근로자들을 일관되게 지원한다. 트럼프는 자신의 ‘큰손’ 지지자로부터 석탄을 구입하는 화력발전소의 폐쇄계획을 철회하라며 담당부서인 테네시 강 유역개발공사(TVA)에 압력을 넣었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업체, 혹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 등 그의 맘에 들지 않는 기업 총수들의 실명을 거론해가며 공격을 가했다. 아마존은 100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프로젝트 입찰과정에서 업계의 지배적 예상과 달리 자사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부당하게 밀려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베조스는 워싱턴포스트 소유주이다.)

공화당을 규정하는 기존의 핵심이슈는 경제였지만, 오늘날 당의 아젠더는 국민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국가기획(state planning) 및 불공정과 특혜로 점철된 정실 자본주의이다.

그리고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은 바로 이것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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