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율주행 자동차와 배려

2019-12-07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작게 크게
우리 몸의 창은 눈이다. 눈을 통해 만물을 보고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에 담긴 것의 지배를 받는다.

눈의 구조는 동그란 카메라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쉬워진다. 제일 앞을 싸고 있는 막이 각막, 안쪽으로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 역할을 하는 홍체, 그 뒤로 렌즈라고 하는 수정체가 있고 렌즈는 두께를 조절하여 초점을 맞춘다.

안구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유리체는 투명하고 혈관이 없는 젤리 같은 물질이다. 이 젤리는 안구의 형태를 유지하고 투명도를 유지하여 눈앞의 물체의 상을 망막에 맺히도록 돕는다. 눈에 벌레 같은 작은 물체가 떠다니는 현상을 날파리증(비문증)이라고 하는데, 맑은 유리체에 작은 혼탁이 와서 빛이 통과하다가 망막 위에 그림자를 만든 것이다. 눈에 맺힌 상은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작은 안구의 모든 조직마다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안구 제일 앞에 있는 각막에 염증이 생기면 각막염, 그다음에 있는 카메라 렌즈에 해당되는 수정체에서 원근의 조절이 약하면 근시, 원시가 되며 수정체에 혼탁이 생긴 상태를 백내장이라 한다. 원인으로는 선천성, 외상, 약물, 당뇨 등이 있고, 노인성변화가 가장 많다.

안구의 압력이 올라가면 녹내장이 생긴다. 심해지면 눈에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에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갑상선 질환은 안구 돌출 및 눈꺼풀 후퇴를 일으켜 눈이 놀란 토끼 눈처럼 보이게 한다. 망막은 빛, 색, 형태 등을 감지하여 뇌의 시각 중추에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황반변성, 망막박리, 당뇨 망막병증 등이 망막을 망가뜨릴 수 있다.

나의 아내는 눈에 관한한 사연이 많다. 선천성 각막변성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각막이 뿌옇게 되면서 마치 창문에 먼지가 낀 것처럼 보인다. 시력이 나쁜 아내는 앞에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여 오해를 산적도 많고, 운전하면서 여러 번 옆 차를 긁었다.

불편해하는 아내에게 권유하여 자율주행 기능이 있는 차를 샀다. 여러 번 시운전 끝에 아내는 이제 고속도로에서는 아예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자동차 컴퓨터의 자율주행에 완전히 맡기고 다닌다. 나는 내 목숨을 자동차 컴퓨터에 맡기자니 겁이 나서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가 없는데 아내는 좁은 골목을 제외한 큰 길에서는 손을 놓고 자동차가 알아서 달리게 한다. 본인의 시력보다 자동차에 달린 물체 감지능력이 더 정확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달을 해도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많은 차들이 안전하게 달릴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옆에서 달리는 다른 운전자들의 배려이다. 자율주행 차들이 아무리 정확하게 계산해서 앞 뒤 간격을 유지해주고 옆으로 가려고 미리 신호를 준다 해도 옆에서 달리던 차들이 배려를 해주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의 배려하는 마음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 것 같다.

얼마 전에 친구가 폐암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그 친구는 과묵하여 처음 사귀기는 어렵지만 배려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설렁탕의 ‘진국’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자녀들에게 헌신적이어서 운동도 같이 해주고 과학숙제로 배 만들어 주는 것도 보았다. 목공 재주가 좋았던 친구는 이웃집의 필요한 것뿐 아니라 가난한 다른 나라까지 가서 현지인들의 건축을 도와주었다. 투병 중에 우리 부부와 같이 먼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힘든 내색 없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주었다. 집에서 챙겨간 양념으로 현지에서 닭도리탕을 맛있게 해준 정성이 그리워진다.

병세가 악화되어 힘든 투병 기간에도 가족들이나 의료진에게 한 마디 불평 없이 오히려 간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자주하였고, 정작 자신은 음식을 못 먹으면서도 옆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아내에게 우유를 가리키며 같이 먹으라는 손짓과 함께 보여준 미소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고 친구의 아내가 전해주었다. 그는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천국을 확신하면서 평안한 얼굴로 가족들을 오히려 위로해주었다.

나는 이런 과정을 보면서 감사가 깃든 배려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암세포는 전혀 배려가 없는 세포이다. 배려 없는 무지막지한 암세포의 공격이 친구를 죽음으로 덮은 것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겨진 애정 어린 배려가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다. 배려있는 사랑은 영원히 기억되며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을 절망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기 때문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