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셸린, 음식에서 와인까지

2019-12-06 (금)
작게 크게
와인애호가들이 구독하는 잡지 중에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보케이트’(Robert Parker’s Wine Advocate)가 있다.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디캔터’(Decanter) ‘와인 엔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매거진으로,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진지한 와인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격월간 간행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잡지는 ‘와인 황제’라 불리는 비평가 로버트 파커가 1978년 창간한 것이다. 당시 와인에 대해 무지하던 미국인 소비자들을 위해 만든 컨수머 가이드였고, 여기서 세계 최초로 100점 만점의 와인평가점수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 업계에서는 와인 맛을 점수로 매기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맹비난했지만 소비자들은 환영했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거의 모든 와인전문지들이 와인 평가를 점수로 매기고 있다.

‘파커 스코어’(parker score)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와인 평가의 대명사로 여겨져온 RPWA가 지난 달 미셸린(Michelin) 사에 매각됐다. 글로벌 타이어 회사이자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를 출판하는 미셸린은 지난 22일 뉴욕에서 열린 연례 시음행사(‘Matter of Taste’)에서 잡지 RPWA와 온라인 로버트 파커 닷컴(RobertParker.com)의 지분을 100%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로버트 파커(72)가 지난 5월 은퇴한 지 6개월만이다.


40년간 이 잡지를 이끌어온 파커는 몇 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은퇴를 준비했는데 그 중 하나가 2017년에 지분의 40%를 매도한 것이다. 그때 지분을 사들인 회사가 미셸린이었고, 이번에 나머지를 다 인수한 것이다. 음식과 와인은 서구 문화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영원한 짝꿍인 만큼 미셸린은 이 두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플랫폼을 구축한 셈이다.

사실 두 회사는 그 이전부터 미식과 고급 와인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개발해왔다. 2016년 싱가포르와 홍콩 마카오에서는 열린 미셸린 스타 셰프들의 요리와 RPWA 전문가들이 추천한 와인의 페어링 만찬은 당연히 최상의 맛을 경험하는 이벤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스 신들이 먹고 마셨다는 암브로시아와 넥타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런 식으로 RPWA와 미셸린은 지난 2년 동안 궁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문화와 분위기를 익혀왔고, 각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최상의 미식과 와인 경험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한 몸이 된 것이다. 두 회사는 또한 앞으로 새로운 와인 앤 푸드 디지털 컨텐츠와 서비스도 창출하고 공유할 계획이다.

RPWA는 로버트 파커가 은퇴한 후 후배 와인 전문가 10명이 세계 각 와인 산지를 커버하는 전문 필진으로 포진하고 있어 흔들림 없이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매년 약 4만여개의 와인을 리뷰하여 점수와 테이스팅 노트를 발표하고 있으며, 온라인(RobertParker.com) 웹사이트에는 1992년 이후 출간된 30만개 이상의 오리지널 테이스팅 노트가 포함된 모든 잡지 내용이 보관돼있다. 첫 호를 600명에게 무료 발송했던 이 잡지는 현재 37개국에서 5만여명이 구독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지금까지 광고와 협찬 없이 발행된다.

미식 문화의 국제적 표준이라 해도 좋은 미셸린 가이드와 와인 평가의 선두주자인 RPWA의 파트너십 소식에 세계의 미식가와 와인 애호가들은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흥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변화나 프로젝트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국 1%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미각의 불평등에 정점을 찍는 일이 아닐지, 살짝 우려되기도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