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자원

2019-11-15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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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내 가장 좋은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람이 있다. NYU 미술대학의 기틀을 다진 월터 쿡(1888-1962) 박사였다. 미술사학과장을 오래 역임했던 그가 1930년대 히틀러를 ‘나의 친구’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히틀러가 나무를 흔들어대니 내가 그 사과들을 줍는다”고 그는 말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은 서구문명의 변방이었다. 서유럽이 과학과 예술의 중심이었다. 중심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진 것은 2차 대전 후였다. 이후 20세기는 명실 공히 미국의 세기가 되었는데, 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아마도 히틀러였을 것이다.

1933년 1월말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바로 한 일은 모든 공직에서 비 아리아인을 쫓아내는 것이었다. ‘아리아인’이란 유대계 아닌 백인. 생명의 위협을 느낀 유대인들은 대거 피난길에 올랐고, 많은 수가 미국으로 향했다. 1944년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태생 유대인은 13만 3,000명. 그중에는 당대의 인재들, 최고의 지식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쿡 박사는 피난 온 학자들을 적극 영입했다. 이들로 조성된 비옥한 학문적 토양에서 후진이 양성되면서 현대 미술사학의 뿌리가 내려졌다. 당시 영입된 대표적 학자는 20세기 미술사학의 아버지로 불린 어윈 파노프스키. 함부르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 나치에 쫓겨 망명했다.

그외 많은 예술가들이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집합하면서 미국은 유럽에 대한 오랜 문화적 열등감을 벗고 20세기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열었다.

예술계보다 더욱 히틀러의 덕을 본 것은 과학계였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로 과학자들의 대 탈출이 이어지면서 학계의 지형이 바뀌었다. 미국으로 망명한 과학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인슈타인 그리고 화학무기를 개발한 프리츠 하버 등.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프로젝트인 맨해턴 프로젝트는 한스 베테, 펠릭스 블로흐 등 당시 망명 과학자들이 있어 가능했다.

미국은 가만히 앉아서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최고의 인재들을 공짜로 얻었고, 이들의 지식과 기술은 그대로 미국의 자산이 되었다. 히틀러는 ‘나의 친구’라는 말이 나올만했다.

“재능은 기술혁신의 생명선이다. … DACA 학생들 편에 서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 일일뿐 아니라 경쟁력에서도 옳은 일이다.”

12일 시작된 연방대법원의 DACA(불체청소년 추방유예) 심리를 앞두고 마이크로 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 회장과 프린스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러버 총장이 시사주간지 타임에 공동 기고한 글의 서두이다. 제목은 ‘우리는 왜 DACA 수혜자들을 위해 대법까지 가며 싸우나’.

연방대법이 심리 중인 관련 재판은 현재 3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 UC 평의회 소송, DACA 청년대표 소송 그리고 마이크로 소프트/프린스턴 소송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에는 현재 60여명의 DACA 인재들이 엔지니어에서부터 재정관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스미스 회장은 밝힌다. 프린스턴이 세계 일류대학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모든 배경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유치한 덕분이며, 종신재직 교수(후보 포함)의 30%는 외국시민들이라고 아이스그러버 총장은 말한다.

“재능이 있으면 어디로든 이주 가능한 시대에 인재들을 미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끌어오고 보유해야 기업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다, 이 땅에서 키워낸 DACA 인재들을 지키는 것은 미국을 위한 길이다”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연방대법의 결정과는 별도로 DACA 청년들의 합법적 체류보장 법안이 통과되도록 연방의회에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바로 드림(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법안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 손잡고 국경을 넘어온 불체청소년들이 미국시민으로 살아갈 길을 열어주자는 이 법안의 취지에는 대부분 찬성한다. 하지만 2001년 상정되고 10년이 지나도록 통과되지 못하자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이 임시조처로 내린 행정명령이 DACA이다.

시행 당시 31세 미만으로 2007년 6월15일 이전 미국에 온 불체청(소)년들에게 2년 단위 체류자격을 부여한 DACA 수혜자는 총 70여만명. 한인자녀들도 7,000명 정도 된다. 지금의 재판은 트럼프 대통령이 2년 전 DACA 폐지령을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인 21세기 “가장 중요한 자원은 재능”이라고 이 분야 전문가인 윌리엄 커 하버드 경영대 교수는 말한다. 세계 각지의 인재들을 얼마나 많이 끌어오느냐가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말이다.

히틀러의 패망은 유대인 인재들을 내쫓은 데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집안의 보물을 내다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앞날을 내다본다면 반 이민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이 땅에서 교육시키고 길러낸 드리머들을 내쫓는 것은 더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 중에 21세기 아인슈타인이 있을지 누가 아는가.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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