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은 미국인들에게 도주와 무법의 상징이다. 사법기관에 쫓기던 무법자들은 국경을 넘어 피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1920년대 금주령이 선포된 후 멕시코는 밀주 생산의 중심이었고 60년대 이후는 마리화나 등 마약의 공급처였다.
그러나 멕시코가 마약수출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은 90년대 이후다. 그전까지는 콜롬비아가 마약의 수도였다. 그러다 미국과 콜롬비아의 양국 공조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사살되고 이들 마약의 공급루트이던 플로리다가 집중적으로 단속대상이 되자 마약카르텔은 멕시코로 방향을 튼다.
처음 이들의 공급책 역할을 하던 멕시코 마약조직은 콜롬비아 카르텔이 무너지면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떠오른다. 이들의 부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엘 차포’라는 별명을 가진 호아킨 구스만이다. 시놀로아 지역 빈민 출신으로 말단 마약보급책이던 그는 미국국경에 터널을 뚫는 수법으로 대량수출의 길을 연다.
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왕’이란 평을 받지만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체포돼 멕시코로 압송된 후 20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2001년 간수를 매수해 탈출에 성공했었고, 2014년 땅굴을 파 다시 탈출하지만 2015년 또 체포된 후 2016년 미국으로 송환돼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그의 잦은 탈출은 멕시코 사법당국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한가를 보여준다. 멕시코 마약갱단은 미국으로 들어오는 코케인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세력다툼으로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공식통계로는 6만, 비공식으로는 12만에 달한다.
지난 4일 멕시코 북부 소노라 지역을 여행 중이던 미국인 여성 3명과 아동 6명 등 9명이 멕시코 마약갱단에 무참히 사살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은 멕시코에 살고 있는 미국 모르몬교도들로 애리조나에 있는 친척집을 방문하려다 경쟁 마약조직으로 오인 받아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말 연방정부가 일부다처제를 금지하자 일부 모르몬들은 이에 반발해 멕시코로 건너갔는데 그중 한 명이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의 증조할아버지 마일스 롬니였다. 미트의 아버지 조지는 그렇게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 미시건 주지사가 됐다.
갱들 간의 전쟁이 한창인 멕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의 하나다. 작년 한해에만 3만6,000명이 살해당했고 올해도 비슷하다. 지난달 멕시코 경찰과 군대가 마약왕 구스만의 아들이자 새로운 마약조직 두목 오비디오 구스만을 잡고도 갱단에 포위된 후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은 현재 멕시코 치안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처럼 멕시코 마약조직이 기승을 부리는 원인은 미국에 있다. 미국인이 마약구입에 사용하는 돈은 연 1,500억 달러로 이 돈의 대부분이 멕시코로 흘러들고 있다. 이 돈이 결국 마약조직을 키우고 갱들 간 살인극을 부르는 연료인 셈이다.
이번 소노라 학살극은 극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집념과 자기희생 정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살아남은 8명의 어린이들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이중 한 명은 총에 맞은 상태로 수 마일을 걸어 도움을 청하는데 성공했으며 한 아이의 어머니는 아기를 차 밑바닥에 숨기고 자신은 차 밖으로 걸어나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미 멕시코 사법당국의 공조와 단속강화도 중요하지만 마약 구매를 중단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이들 살인자와 공범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