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사상, 동태 및 정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기관’- 특무기관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정보가 중요하다. 이 사실을 중국인들은 아주 일찍부터 터득했다. 그래서인지 손자병법은 간자(間者), 다시 말해 특무요원을 전쟁에 임해 활용하는 용간편(用間篇)을 주요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특무란 것은 원래 한시적 조직이었다. 전시에 적정파악과 적진 내부의 단결을 와해시키는 것이 그 임무인 식으로. 환관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하는 황제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황제의 눈과 귀, 더나가 몽둥이 역할을 했다.
‘환관들의 특무기관 장악’은 명대(1368~1644년)에 절정에 달한다. 황제의 명을 직접 받아 나라의 사법기관인 삼법사를 거치지 않고 옥사를 마음대로 처리한다. 그런 상설 특무기관으로 명 태조 시절에 설치된 것이 금의위(錦衣衛)다.
그 다음에 설치된 것이 3대 황제 영락제 시절의 동집사창(東緝事廠)으로 약자로 ‘동창’으로 불렸다.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 혜종을 몰아내고 황위를 찬탈한 인물이다. 그런 ‘정치적 전과’ 때문에 ‘동창’이란 비선의 특무기관을 따로 만들어 무자비한 반대파 숙청의 도구로 사용한 것.
그리고 50여년 후 서집사창, 약자로 ‘서창’이란 특무기관이 또 설치된다. 그 서창의 우두머리는 당시 황제 헌종이 가장 총애하는 환관 왕직으로 서창의 위세는 한때 동창을 능가했다.
헌종의 손자인 무종 때 또 다른 비밀조직인 내행창이 설치된다. 금의위, 동창, 서창을 감시하는 특무기관 중의 특무기관으로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대태감 유근이 설립했다. 그러나 그 서슬 퍼렇던 내행창은 유근이 능지처참을 당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명나라 말기까지 계속 특무기관으로 그 위세를 떨친 기관은 동창이다. 희종시대(1620~1627년)에는 희대의 간신 위충현이 동창을 관장하면서 명나라 조정에는 백색공포가 엄습한다.
양심적인 사대부들의 정치적 결사체인 동림당 인사 100여 명이 동창을 앞세운 위충현 일당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고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위충현은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 황제를 만나도 말에서 내리지 않을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의위, 동창, 서창, 그도 모자라 내행창. 합쳐서 ‘창위’(廠衛)로 불린 명나라의 황제 직할 비선 사찰기구.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나.
예나 지금이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의 하나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사찰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특히 정당성이 약한 권력일수록.
또 다른 교훈은 이른바 ‘적폐청산’을 내세운 비선 사찰조직의 발호는 또 다른 거대한 부패의 비리를 낳고 결국은 망국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환관의 특무기관이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후 얼마 못가 새 황제 숭정제가 등극하면서 위충헌은 실각과 함께 그 시신이 갈기갈기 찢기는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그리고 명나라도 농민반란 등으로 멸망하고 만다.
공수처라고 했나. 대통령 직할에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새 특무기관 이름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한 그 공수처 신설에 정권의 운명을 건 듯한 문재인 정부. 관련해 떠올려진 것이 ‘동창’이라면 지나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