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래킹 데이터의 힘’ … ‘스마트 야구’ 열풍

2019-10-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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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킹 데이터 야구를 바꾸다

▶ 류현진, 달라진 투구 궤적 분석, 8월 슬럼프 때 반등 해법 찾아

‘트래킹 데이터의 힘’ …  ‘스마트 야구’ 열풍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투수 최초로 평균자책점 1위(2.32)를 차지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LA 다저스)은 올 시즌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수첩을 보고 상대 타자의 데이터를 참고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원래 류현진은 데이터보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공을 뿌리는 데 익숙한 투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상대를 철저히 연구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릭 허니컷 다저스 투수코치는 류현진을“숙제 잘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꿈의 1점대 평균자책점을 찍다가 8월 한 달간 7.48(21이닝 18실점)로 무너졌을 때도 반등 해법을 데이터에서 찾았다. 투구 궤적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맨의 트래킹 데이터(Tracking Data)를 통해 주무기 체인지업이 부진했던 기간 홈 플레이트에서 3인치 정도 벗어난 걸 확인했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조정 작업에 들어간 류현진은 9월 평균자책점 2.13(25.1이닝 6실점)으로 위력을 되찾았다.

데이터 야구의 중요성은 2011년 영화 ‘머니볼’을 통해 잘 알려졌다. 이 영화는 적은 운영 예산 때문에 약팀으로 추락했던 오클랜드가 빌리 빈이 단장으로 부임해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 피터 브랜드와 함께 팀을 저비용 고효율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으로 만든 과정을 다뤘다. 당시는 타율, 출루율, 자책점 등 선수의 기본적인 기록 수치를 가지고 분석하는 수준이었다.


20세기의 분석야구가 ‘데이터 야구 1세대’라면 이후 통계적 분석과 경기 영상까지 활용하는 ‘2세대’가 열렸다. 현재는 군사용 레이더 기술로 스포츠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해 데이터화 하는 ‘3세대’다.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은 물론 공의 회전수와 회전축, 직구의 경우 상하좌우 무브먼트, 디딤발 위치의 변화, 릴리스 포인트 등까지 분석해 활용한다.

홈런이나 타율, 출루율 등 단순 기록이 선수들의 시험 성적표라면 트랙맨 데이터는 문제 풀이과정을 확인시켜주는 장치에 가깝다. 경기 과정을 데이터화해 선수들이 더 좋은 투구, 더 좋은 타격, 더 좋은 수비를 할 수 있도록 자료와 통계 분석을 제시한다.
‘트래킹 데이터의 힘’ …  ‘스마트 야구’ 열풍

류현진이 지난 8월18일 애틀랜타전에서 부진했을 때의 체인지업 궤적(왼쪽)과 교정 과정을 거친 뒤 10월6일 워싱턴전에서 호투했을 때의 체인지업 궤적. 부진했을 때는 스트라이크존 가운데에 몰리거나 아예 빠지는 공이 많은 반면, 호투했을 때는 낮은 쪽 스트라이 크존 경계에 걸쳐 뿌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베이스볼서번트 캡처]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상대하는 플레이 한 번당 나오는 데이터는 약 80개다. 이를 위해 레이더가 수집하는 기본 샘플 데이터까지 합치면 초당 수 만개에 달한다. 현미경이라는 수식어도 부족할 정도로 데이터가 야구를 대해부하는 것이다. 경기장 곳곳에 고정해 설치하는 트랙맨 장비와 달리 이동이 가능한 훈련용 측정 장비 ‘랩소도’ 등도 자주 이용된다.

3세대 데이터는 야구를 바꿔놨다. 메이저리그는 타자들이 퍼 올리는 어퍼 스윙(Upper Swing)으로 장타를 노리는 ‘뜬 공 혁명(Flyball Revolution)’의 시대로 이어졌다. 타구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저명한 야구 통계학자 톰 탱고의 연구로 특정 각도와 빠른 속도를 지닌 타구가 득점과 연결된 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빅리그 타자들이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고 풀스윙으로 많은 장타를 생산하고 있다. 실제 메이저리그의 홈런은 데이터 야구로 인한 ‘뜬 공 혁명’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6년 5,000개를 돌파했고, 올 시즌엔 역대 최다인 6,776개가 쏟아졌다.

투수들 역시 데이터 통계로 투수의 전략을 설계하는 ‘피치 디자인(Pitch Design)’의 시대가 왔다. LA 다저스와 탬파베이, 휴스턴은 타자들의 어퍼 스윙을 높은 직구(High Fastball)로 무너뜨린 대표적인 팀이다. 특히 휴스턴은 강력한 직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성적이 따르지 않던 투수들을 영입하고 볼 배합을 개조해 리그 최고의 투수들로 만들어냈다. 휴스턴의 전략은 강한 직구를 높게 던지고 종으로 떨어트리는 변화구로 스트라이크 존 상하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두고 집안 싸움을 하고 있는 저스틴 벌랜더와 게릿 콜이 큰 효과를 본 주인공이다. 둘은 올 시즌 나란히 20승-300탈삼진을 달성했다.

첨단 장비 도입 이후 빅리그의 수준도 높아졌다. 팀 홈런 200개 이상을 치는 팀들과 시속 100마일 광속구를 뿌리는 투수들이 늘어났다. 트랙맨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신동윤 애슬릿 미디어 이사는 “과거 수퍼스타들은 데이터 분석 없이도 천재적인 감각과 경험으로 탁월한 경지에 도달했다”면서 “데이터의 목적은 그들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그들의 90% 수준까지 다른 선수들도 보편적으로 따라가 리그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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