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우버 운전기사와의 대화

2019-10-19 (토)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작게 크게
지난 주 뉴욕에서 열렸던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기차로 다녀왔는데 일요일 아침 다시 돌아올 때는 워싱턴 DC의 기차역에서 페어팩스 카운티에 위치한 내가 섬기는 교회까지 우버를 이용했다.

나를 픽업한 우버 운전사는 이름과 말 억양으로 보아 히스패닉계 이민자였음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교회까지 겨우 3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운전사는 약 20년 전에 엘살바도로에서 이민을 왔다. 아니, 사실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왔다고 했다.

미국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에 조리가 있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대학을 다니다가 왔다고 했다. 당시에 형이 미국에 불법으로 먼저 와서 살고 있었고 형의 권유로 자신도 혼자 왔다고 했다. 부모님들은 고국에 두고 말이다. 자신의 불법 입국에 필요한 경비는 형이 돈을 빌려 마련했다. 그리고 형과 재회한지 3일만에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빨리 일해 돈을 모아 형이 빌린 돈을 갚아야 했다. 학교를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첫 일은 목수 보조였다. 그러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에게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톱을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고, 나무를 자르라고 규격을 목수가 불러주면 분명히 사용 언어는 스페인어였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렇지만 젊은 나이였고 눈 썰미도 좋아 일을 제법 빨리 배웠다. 다행히도 몇 년 내에 영주권 취득 방법도 찾았고 시민권도 취득했다.

다른 불법 이민자들에 비하면 자신은 행운이었다고 했다. 영주권 취득을 위해 상당히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 결혼이라고 했는데 그 운전사에게 어떤 방법으로 영주권을 취득 했느냐고까지는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

그 운전사는 이제 3명의 자녀까지 두었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힘들게 일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자신은 1년에 한 두 번 고국을 방문한다고 했다. 왕복 비행기표를 두 달 전쯤에 예매하면 400~500달러 정도에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번에 1주일 정도 있다가 온다고 했다. 왜 좀 더 있다고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고국에 가면 친구들도 반갑게 만나지만 모두 생업에 바쁘다고 했다. 고국을 방문하는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어 모두 시간을 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만 그렇게 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 우버 운전사는 나와의 대화가 불법 이민 문제에 다다르자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사실 이민자들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했다. 특히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 그 주체이며, 그 가운데에는 합법, 불법 이민자 구분이 없다고 했다. 미국 사람들 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되물어 왔다. 공사장에 나가 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현장 감독이나 조장 한 두 명 정도만 빼놓고 나머지 모두는 히스패닉 계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프라 구축이나 농장 일은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없으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히스패닉계 이민자가 절대로 미국 토박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기에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을 불법이라도 경원시 말라고 했다.

상당수가 불법 체류자인 엘살바도르 출신 히스패닉 인구가 미국에서 300만이 넘을 텐데 그들을 모두 본국으로 추방하면 인구가 겨우 650만밖에 안 되는 엘살바도르는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좋지 않고 일자리가 없는 엘살바도르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 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엘살바도르는 미국에 사는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들이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나라를 지탱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돌려 보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조국과 국민들을 모두 파탄으로 몰아 넣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던 중 차는 목적지인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건물 앞으로 차를 댈 때 눈에 띈 것은 교회의 개축 현장이었다. 그 운전사는 의미있는 미소를 띠면서 나지막히 한 마디를 던졌다. “아, 당신의 교회도 공사 중이네요...”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