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커볼 문화센터

2019-10-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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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에서 게티 센터에 가려면 405 프리웨이 북쪽 방향으로 달리다가 게티 센터 드라이브에서 내리면 된다. 그런데 게티 센터 바로 다음 출구는 스커볼 센터 드라이브(Skirball Ctr. Dr.)로, 샌타모니카 산자락에 자리잡은 ‘스커볼 문화센터’로 이어지는 길이다. 출구 하나 차이로 가까이 위치해있지만 게티를 지나 스커볼을 방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한인 중에서 여기에 가본 사람은 무척 드문데, 사실은 일부러 찾아가볼 이유가 충분한 곳이다.

1996년 개관한 스커볼 컬처럴 센터(Skirball Cultural Center)는 유대인들의 4,000년 역사와 문화, 예술, 이민역사를 전시하고 교육하며 다양한 공연도 열리는 뮤지엄이자 문화센터다. 그렇다고 유대인들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고, 오히려 미국의 다인종 다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다원성을 추구하는 문화공간이다.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자연 배경에 묻힌 듯 조용하게 지어진 건축물이다. 가파르고 복잡한 산타모니카 산맥의 지형을 하나도 해치지 않고 15에이커 산자락을 타고 아늑하게 들어앉은 4개 건물은 아름다운 정원과 회랑, 코트야드를 거치며 유기적으로 연결돼있어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특히 꼭 방문할 필요가 있는데 ‘노아의 방주(Noah‘s Ark)’를 재현해놓은 재미난 문화체험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8,000 평방피트의 넓은 공간에 지어진 20미터 길이의 방주에는 유명작가들이 온갖 재활용품을 사용해 놀라운 창의력으로 만든 300여개의 동물들이 들어차있다. 아이들은 직접 노아가 되어 방주를 만들고, 동물들을 대피시키고, 폭풍을 일으켜 물 위로 배를 떠다니게 할 수도 있다. 요일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어린 자녀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뛰어난 기획력이 느껴지는 좋은 전시도 많이 열린다. 유명한 예술가 중에 유대인이 많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난해의 레너드 번스타인 100주년 기념전을 비롯해 폴 사이먼의 ‘말과 음악’, 로이 리히텐슈타인 판화전, 안셀 애덤스의 만자나 사진전 등 기념비적인 전시들이 이곳서 열렸다.

17일 스커볼 센터에서는 2개의 흥미로운 전시가 개막됐다. ‘스탠리 큐브릭 사진전’과 ‘아메리칸 드림 사진전’이 그것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등 영화사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틴에이저 시절부터 매거진 사진작가로 활동한 것이 유명한데, 그때 찍은 잡지사진 130여점을 볼 수 있다. 독특한 시선과 스타일로 포착한 인물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전시로, 각 사진이 표현하는 강렬한 드라마는 그가 곧 영화감독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큐브릭 팬들은 반드시 보아야할 전시다.

‘아메리칸 드림’(El Sueno Americano)은 미국의 이민정책을 비난하고 고발하는 사진전이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애리조나 주 관세국경보호청에서 청소부로 일했던 사진작가 탐 키퍼가 매일 버려지는 불법이민자들의 쓰레기에서 건져 올린 개인용품들-칫솔, 티셔츠, 장난감, 지갑, 셀폰 등을 모아두었다가 수십 수백개씩 재배치하여 예술사진으로 창조한 작품들이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갈 곳, 즐길 것이 많다. 스커볼 센터는 매주 목요일 무료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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