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운의 민족, 100년의 비극

2019-10-18 (금) 12:00:00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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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의 최고가치는 종교(기독교)였다. 가치는 전쟁을 불렀다. 이슬람이 장악한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시작된 십자군전쟁이다. 종교전쟁은 수세기 이어지고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세력은 그 자체로 악이었다. 그런 이슬람의 적들 중 유럽인들이 영웅으로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 12세기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일대를 지배한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 살라흐앗딘, 바로 살라딘이다.

제3차 십자군전쟁 당시 잉글랜드의 용맹스런 왕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의 관계는 전설처럼 전해진다. 두 왕은 전투에서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지만 속으로는 서로 존경심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살라딘은 정의로우면서 자비로운 군주로 명성이 높았다.

전투 중 리처드 1세가 부상하자 살라딘이 공격을 멈추고 자신의 의사를 보냈다는 일화, 리처드 1세가 전투 중 말을 잃자 말을 보내주었다는 일화 등이 있다. 1년의 전투 후 두 왕은 1192년 평화협정을 맺고 휴전했다. 예루살렘을 살라딘의 통치하에 두되 비무장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를 허용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로부터 700여년 후 리처드 1세의 후손인 대영제국이 자신의 후손을 어떻게 이용하고 내버렸는지 살라딘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살라딘은 쿠르드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철수를 결정하면서 시리아 북부가 혼돈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혼란은 쿠르드족의 위기로 직결된다. 미군이라는 힘의 중추가 사라지자 터키가 쿠르드족을 소탕하겠다며 바로 침공했다. 터키의 진격에 시리아정부군이 맞서고, 미군 떠난 자리에는 러시아가 중재자로 들어섰다.

지난 몇 년 미군과 손잡고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토벌에 앞장섰던 쿠르드족은 그 과정에서 구축했던 세력기반을 한순간에 잃었다. ‘독립’에 대한 염원으로 미군의 총알받이 역할을 감내했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배신’이었다. 그들은 다시 생명을 위협받으며 쫓기고 있다.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는 맘루크 왕조로 이어진 후 1517년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었다. 그리고 400년 쿠르드족은 제국의 수많은 민족 중 하나로 살았다. 시리아 터키 이라크 일대의 산악지대인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서 염소 기르며 꽃을 좋아하는 유목민족으로 살았다.

산속의 이들을 제국의 전쟁터로 끌어낸 것은 대영제국이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쓰러트리기 위해 쿠르드족을 끌어들였다.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1919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오자 이들은 한껏 고무되었다.

하지만 종전 후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 터키가 체결한 세브르 조약에 ‘쿠르드족 자치권 부여’ 조항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터키의 반발 등으로 1923년 로젠 조약으로 대체되면서 이 조항은 사라졌다. 쿠르디스탄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아르메니아 등 5개국으로 분할되었다. 이후 쿠르드족이 수없이 경험하게 되는 ‘약속 그리고 배신’의 뼈아픈 첫 경험이었다.

19세기 제국주의는 세계 전역에서 많은 민족적 비극들을 만들어냈다.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다행히 20세기가 되고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식민지들은 해방되고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했다. 민족정체성을 무시한 인위적 국경설정, 식민통치의 잔재 등으로 나라마다 후유증이 많지만 그래도 독립국가를 이뤘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쿠르드족은 그 기본적 꿈을 실현하지 못해 오늘도 배반의 시간을 살고 있다.


쿠르드족의 비극은 몇 가지 요인에 기초한다. 첫째는 석유였다. 승전 후 오스만제국의 영토를 가르면서 영국은 쿠르드족의 땅인 모술을 자국이 통치하던 이라크로 편입시켰다. 그곳이 거대한 유전지대였기 때문이다. 유전을 보유한 강력한 쿠르디스탄의 탄생을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았다.

둘째는 중동의 침묵이다. 영토 빼앗긴 비슷한 케이스가 팔레스타인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적은 이스라엘인 반면 쿠르드의 적은 같은 아랍중동국가들이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이스라엘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중동국가들이 쿠르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저마다 쿠르드족을 소수민족으로 가지고 있어 이해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쿠르드족의 강한 민족성이다. 살라딘의 후예답게 이들은 강인하다. 나라 없이 흩어져 산 100년의 세월 속에서도 고유 언어와 문화,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각국의 동화정책/탄압에 반발하며, 분리 독립만 끈질기게 요구하니 어느 나라가 이 소수민족을 좋아하겠는가. 미국 영국은 물론 중동의 국가들도 필요하면 손잡고, 용도가 다하면 이들을 버리기를 반복해왔다.

터키의 1,500만 명을 포함, 쿠르드족은 3,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많은 인구가 나라 없는 유랑민이라면 문제가 안 생길 수 없다. 21세기 공존의 시대에 어떻게든 해결책이 나와야 할 텐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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